▲ 박영철 대전예술고 이사장 |
이번 총선은 여러 가지 면에서 지난 수십년간의 총선과는 달랐다. 일단, 1997년 이후 이어져 오던 노동당의 집권이 블레어 시대와 더불어 종말을 맞았다는 것이다. 사실, 제3의 길을 표방하며 수정주의 노선을 걸어왔던 노동당은 보수당과 이념적 차이를 좁혀왔던 차였기에 더욱 영국민들의 선택이 관심을 모았다. 여기에 덧붙여 우리가 짚고 나가야 할 사실은 미국의 민주당이나 우리의 진보적 정당이라고 자칭하는 정당보다 더 진보적인 색채를 띠고 있는 보수당과 우경화된 노동당과의 대결이었던 것이다.
이것을 일부 언론에서는 '온정적 보수주의'라고 표현하였지만, 실상 영국의 정치는 국민중심주의(노동당/진보)와 개인중심주의(보수당/보수)로 이념적 지표가 갈려 있는 상황이기에 아무런 철학적 기반도 없이 영호남 지역주의 정당들, 이권단체와 같은 자칭 진보를 이야기하는 몇몇 정당들, 무조건적 친미, 친북 정당들과 같은 포괄적 부재를 안고있는 한국의 정당들과는 단순 비교를 하긴 어렵기에 만들어낸 조어쯤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앞서 이야기 하였듯이 이번 총선은 첫째로 정권교체를 이루었다. 여기에 노동당과 보수당의 차이는 더욱 줄어든 것 같다는 것이 두 번째 특징이었다. 가장 특이하고 괄목할 만한 성과는 100년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제 3당의 부상, 자민당의 등장이다. 자민당은 전체 유효득표의 23%를 차지하여 확고한 지지계층을 확보하였다. 허나, 제도의 낙후성으로 말미암아 23%의 지지 대부분이 사표화가 되었다. 자민당이 이념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보수당과의 연정에 동의를 하면서 세운 조건이 이를 극복하기 위한 비례대표제의 도입이 이러한 사표방지의 효과를 갖기 때문이다.
위의 특징으로 결과되어진 이번 영국 총선의 백미는 역시 정부 구성에 대한것이 아니었나 한다. 보수, 노동 양당 누구도 정부 구성에 필요한 과반의석을 확보 하지 못하였기에 자민당과의 연정을 절실히 필요로 하였다. 자민당은 이념상 보수당보다는 노동당과 가치를 공유하는 바가 훨씬 많기에 사실 노동/자민 조합이 일반적으로는 더욱 어울린다고 하겠다. 그러나, 최다수당을 차지한 보수당은 자민당과의 연정에 대한 희망을 강력히 희망하는 표현을 할 뿐, 결코 자민당의 의사를 강요하진 않았다. 여기에 자민당의 리더인 닉 크레그 역시 이념보다는 민의를 왜곡할 수 없다는 의사표명을 하고 보수당에 협상의 우선권을 주었다.
백미는 브라운 총리였다. 총선이 끝나자 마자, 패배를 시인하고 자민당과의 연정에 대한 희망을 버리진 않았으나 협상의 우선권을 최다수당을 차지한 보수당에 양보 한다고 선언하였다. 이들에겐 과거보다는 현재와 미래의 영국이 훨씬 중요했다. 그들에겐 너무나 당연한 정치문화였겠으나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고 있는 필자에겐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똑같은 상황이 한국에서 벌어졌다면, 아마도 정권쟁취로 온갖 추잡한 야합과 더러운 뒷거래가 구국의 결단이라고 행해지지 않았을까하는 상상을 해본다.
영국이라는 나라의 정치제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제도적 허점이 많다. 물론, 영국 학자들의 대부분은 영국의 제도가 세계에서 가장 후진적 제도라고 이야기 하고 개선되어야 마땅하다고 한다. 하지만, 세계 어느 누구도 영국의 정치를 후진적이라고 이야기하기는 커녕, 가장 모범적 민주주의의 표상으로 칭송한다. 그것은 그들이 1930년대의 롤스로이스를 고치고 수선하며 정도로 운전하는 베스트 드라이버이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는 21세기 최신형 벤츠(법과 제도)를 가지고 역주행을 서슴지 않는 운전자들이다. 승객의 입장에서 어떤 차를 탈 것인가 고민해 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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