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호택 국제로타리 3680지구 총재 |
지금은 유명 작가가 된 친구 탁석산 박사가 철학을 공부하고 10여 년 전에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면서 학위논문집을 선물로 주었다. 데이비드 흄의 인과론을 분석한 논문이었는데, 나는 그 글을 읽으면서 절망감에 빠졌다. 분명히 한글로 쓴 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내용을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몇 달 후에 철학과 학생들을 위한 교재로 사용하기 위해 그 논문을 대중적으로 편집했다는 책을 선물 받았는데, 쉽게 썼다는 내용도 알아보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철학은 어렵다. 정말 어렵다.
그렇지만 전문가가 쉽게 풀어 설명하는 철학 얘기를 듣다 보면 무릎을 탁 칠 때가 많다. 결국 철학이란 사람이 살면서 만나는 여러 문제들을 미리 고민한 천재들의 얘기를 듣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철학자의 고민만 철학의 주제가 아니라 우리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문제들도 철학의 주제가 될 수 있다. 어떤 전공을 택해서 어떻게 인생을 잘 살 것인지, 아이는 어떻게 키울 것인지, 심지어는 어떤 옷을 살 것인지 까지도 철학의 범주라고 한다.
100년 전에 돌아가신 철학자 니체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신(神)은 죽었다'는 유명한 말을 기억한다. 대표적인 허무주의자로 인정받고 있는 니체를 '인생이란 것이 허무하니 살면 무엇 하나?' 하는 생각으로 대하면 안 된다고 철학자들은 말한다.
허무주의는 두 개의 사조로 나뉘는데, 전술한 생각을 소극적 허무주의라고 한다. 적극적 허무주의도 있는데, '인생이란 것이 원래 아무 것도 없는 허무한 존재이기 때문에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생각이라는 것이다. 아프리카에 신발을 팔아보라고 영업사원을 보냈더니 '모든 사람들이 맨발로 살기 때문에 신발을 팔 수 없다'는 보고를 한 사원과 '대박이다. 신발 신은 사람이 하나도 없다. 얼마든지 팔 수 있겠다'는 보고를 한 사람으로 나뉘더라는 얘기가 생각난다. 그리고 니체의 허무주의는 적극적 허무주의라고 한다.
우리는 6·2 지방선거에서 우리를 대신해서 세상을 밝혀 나갈 지도자들을 뽑는다. 선거에 출마한 사람들에 대해 마음 속으로는 '모두 도둑놈'이라고 생각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능력있고 똑똑하면서도 도덕적인 사람을 나 대신 내세워야 내 인생이 편하다는 것은 안다. 힘들고 어려운 선거판에 우리가 뛰어들지 않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선거가 끝나면 당선된 사람들을 일단 믿고 전폭적인 지지로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모든 조건이 갖추어 줬음에도 불구하고 일을 잘 하지 못하거나 부정한 행위를 저지르는 사람이 있다면 가차없이 다음 선거에서 낙방시킬 생각도 해야 한다. 당진의 민종기씨도 처음부터 무능력하고 부패한 사람은 아니었다. 자리가 사람을 변하게 만드는 것이다. 부패한 공직자를 보며 손가락질하고 등 돌리는 것은 소극적 허무주의와 같다. 우리 손으로 뽑은 공직자가 훌륭하게 임무를 마칠 수 있도록 도우면서 감시하는 기능을 갖추는 것은 시민의 의무이자 권리이다. 인생이 허무하다고 해서 살 의미를 잃는 사람보다는 허무하니 뭔가 새로운 나만의 인생을 개척해야 하겠다는 니체의 허무주의가 새로운 4년을 위해 필요한 생각이 되었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