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春 - 황홀하고 감동적인 생명의 축제
얼었던 땅이 녹는 3월의 천리포수목원은 뿌리로부터 수액이 올라 젖어드는 나뭇가지를 보며 ‘봄날’의 희열을 맛보는 탐색의 계절이다. 수선화, 튤립 등 땅에 거의 붙다시피 하는 꼬마 꽃들이 큰나무와 초화들이 깊은 그늘을 드리우기 전에 먼저 그들의 존재를 알린다. 그래서 3월은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위한 틈새의 달이고 배려의 달이다.
4월부터는 정원에서 각기 다른 향기와 모양, 색상으로 표현되는 꽃의 릴레이가 펼쳐진다. 특히 설립자인 민병갈 원장이 그토록 집착하였다는 목련, 약 500여 종이 연이어 피고 지는 한 달 동안은 천리포의 정원은 흡사 목련의 뭉게구름 속에 떠있는 천국이자 세상 끝의 정원이라 한다.
■ 夏 - 초록의 농담과 나무와 잎들 고유의 무늬의 여름 정원
여름은 늦깍이 꽃들이 지고 초록으로 변하는 정원에서 꽃이 지나간 자리를 서운해만 말고 나무 아래에서 그들에게 말을 걸어보고 그들의 시선을 느껴 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숲은 초록이 짙어질수록 이 시기에 피는 꽃들은 색이 엷어지고 흰색으로 핀다.
6월부터는 꽃보다는 비누방울 무늬, 줄무늬, 파충류 피부 같은 무늬 등의 잎을 하늘빛에 투과하여 감상해야 한다. 나무와 풀이 가진 외형의 세세한 모습과 다양함을 한눈에 찾을 수 있는 여름의 무늬는 낮보다는 여린 새벽시간에 또렷하게 감상할 수 있다.
■ 秋 - 꽃무릇의 ‘축하’메시지
물들어 가는 것은 나무들이 이듬해를 준비하기 위해 몸집을 줄이 것이다. 후박나무는 진녹의 열매를 맺고, 보랏빛 무릇과 보랏빛 맥문동이 노을진 언덕에 보랏빛 8월의 저녁을 밝히고, 9월과 10월 사이에 꽃무릇으로 언덕을 붉게 물 드리면 가을은 가는 것이다. 계절이 끝나기 전에 가을정원을 거닐며‘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는’을 나지막이 불러 보고 밀러의 사색길에서 바람의 말을 들어 보자.
■ 冬 - 휴식과 평화로운 수다의 시간
꽃도 없고 화려한 잎들의 향연도 없는 정원을 탐스러운 붉은 열매로 장식하는 호랑가시나무로 천리포수목원은 미국호랑가시학회가 인증한 ‘공인 호랑가시수목원’이기도 하다. 이 수목원은 370여종의 호랑가시나무 종류가 자라고 있다고 한다. 봄은 기운의 계절, 여름은 힘의 계절, 가을은 물들고 철듦의 계절, 그리고 겨울의 선과 여백이 있는 휴식의 계절을 보내며 수목원이 또다시 1년의 대서사시를 준비한다.
정원이 없으면 영혼이 없다고 생각하는 나라 영국. 그들에게 정원은 행복한 일상과 휴식의 상징이며,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리 대전도 도심 한복판에 근사한 수목원이 있다. 천리포수목원의 아름다운 모습이 담긴 사진을 감상하며 우리 한밭수목원도 10년, 20년, 50년이 지난 후 세상에서 가장아름다운 수목원중 하나가 되어 정원을 소요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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