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아름]모교에서 근무하는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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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아름]모교에서 근무하는 축복

[교유단상]한아름 태안고 교사

  • 승인 2010-05-25 23:00
  • 신문게재 2010-05-26 20면
  • 한아름 태안고 교사한아름 태안고 교사
남자는 군대에서 제대한 후 한동안 군대에 재입대하는 악몽을 꾼다는 우스갯소리를 듣는다. 그럴 때면 신규교사는 임용고사를 다시 공부하는 끔찍한 꿈을 여러 번 꾼다는 이야기를 해 주고 싶다. 초췌한 몰골로 도서관에 앉아 다시 임용고사를 준비하는 암울한 꿈. 그런 악몽을 꾼 날이면 학교에서 학생들이 말썽을 피워 녹초가 되어도, 처리할 업무가 많아 끙끙대다가도 감사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진다. 생동감 넘치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만 해도 내겐 너무나 벅찬 행복이다. 이런 벅찬 행복 위에 아무나 누리지 못하는 또 다른 기쁨이 내게 주어졌다. 태안고등학교가 나의 첫 학교라는 것이다.

▲ 한아름 태안고 교사
▲ 한아름 태안고 교사
백화산 자락을 지나는 출근길은 수년전에도 똑같이 걸었던, 내게는 너무도 익숙한 길이다. 고교시절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지났던 길. 바로 그 길을 이제는 내 제자들과 함께 걷고 있다. 수년 전 나는 태안고등학교 학생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태안고등학교 3학년 담임이다. 진초록 교복을 입고 머리를 질끈 묶고 공부하던 여고생이 어느새 성장하여 그 교정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모교에 부임하면 좋은 점이 참 많다. 잊혀져 가는 아름다운 고교시절의 추억들이 자연스럽게 머리를 스쳐간다. 선도부로 아침 일찍 교문 앞에 서 있던 기억, 점심시간이면 창가에 기대어 운동장 가득 퍼지는 사랑 노래에 가슴 설?던 기억…. 학교 곳곳은 내 추억이 오롯이 담긴 보물 상자다.

고등학교 시절, 교사에 대한 꿈을 심어주고 사범대에 진학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고마우신 은사님들과 함께 근무하고 있다는 것 역시 정말 큰 행복이다. 이제는 교사가 되어 돌아온 제자에게 예전의 그 따뜻함으로 오랜 교직생활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가르쳐 주시고 진정한 교육자의 길을 일깨워 주신다.

올해에는 고3 담임을 맡게 되었다. 부푼 마음으로 학교에 발령 받은 일이 엊그제 같은데 고3 담임이라니. 주변에서 잘할 수 있겠느냐며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다. 그들 말처럼 모르는 것이 많아 부담감도 적지 않다. 그러나 가르치는 자는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내가 근무하는 학교이자, 나의 사랑스런 후배들이 제각기 꿈을 찾아 나아가는 이 공간에서 훌륭한 교사, 훌륭한 선배의 역할을 다하기 위하여 아직 부족한 부분에 대하여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학기가 시작한지 몇 달이 지나고 보니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는 학생들을 보게 된다. 이런 학생들을 보면 담임선생님에서 선배로 변신하여 다가간다. 수험생으로서 성적에 대한 압박감으로 힘들고 지치더라도 참고 견뎌낼 수 있는 인내와 자신에 대한 정성은 반드시 좋은 결과를 불러온다는 긍정적인 생각, 그리고 땀과 노력은 결코 배반하지 않는다는 믿음,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여 성실하게 임하는 자세, 즉 '인내, 긍정, 노력, 성실' 이 네 가지가 성공하는 인생의 열쇠라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쩌면 아이들에게 하는 이 이야기가 그러한 신념들을 잃어가고 있는 내게 하는 말인 것 같아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아이들이 잘 해 낼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재촉하고 다그치기 보다는 기다려주고, 학생들의 성장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면 올 한 해가 사랑하는 나의 제자, 후배들을 위한 후회 없는 시간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고등학교, 대학교 때 공부하면서 매일같이 태안고등학교에서 은사님들과 함께 사랑스런 후배들을 가르치는 나의 모습을 꿈꿨다. 그리고 그 꿈은 이제 현실로 다가왔다. 교사로서, 그리고 같은 길을 지나 온 선배로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함께 할 수 있다는 크나큰 축복을 받은 나는 오늘도 감사한 마음으로 학교를 향해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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