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우수 공주교육대 총장 |
내가 이휘소(미국명 벤자민 리) 박사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것은 1974년으로 기억한다. 당시 나는 대학원 석사과정 학생이었는데 어느 날 선배 한 분이 권해 그 선배와 함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강당에서 그분의 특강을 들었다. 내게는 생소했던 입자물리 이론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휘소 박사는 영어로 강연을 하셨는데 강연이 끝나고 질의 응답 시간에 어느 학생이 서툰 영어로 질문하자 이번엔 유창한 우리말로 답하는 것을 보며 깜짝 놀라 옆의 선배에게 “아니, 저분 우리말을 하시네요.” 했더니, 선배는 이 박사가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하였다. 우리나라 사람인데 어쩌면 그렇게 영어를 잘 하시나-내가 지금까지 만난 우리나라 사람 중에서 가장 영어를 잘 한 분으로 기억한다-하는 생각을 했었고, 그 선배로부터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을 최초의 물리학자가 될 대단한 분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는 몇 년 후 미국에서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보도를 보며 참 아까운 분이 돌아가셨구나 하며 안타까워했었다.
물리학, 그중에서도 특히 입자물리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에게만 주로 알려져 있던 이휘소 박사가 많은 국민들에게 알려지게 된 결정적 계기는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주인공 이용후가 이휘소 박사를 모델로 했다고 작가가 밝히면서부터일 것이다. 특히 이 소설은 대단한 베스트셀러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KBS의 여론 조사에 의하면 이휘소 박사를 아는 우리나라 국민의 70% 이상이 이 박사가 우리나라의 핵무기 개발계획에 참여했다고 믿고 있고, 또한 그 중에서 무려 90%가 넘는 국민들이 외국 정보기관이 교통사고로 위장해 이 박사를 살해했다고 믿고 있다고 한다. 이휘소 박사는 입자물리학을 전공한 분인데 핵물리학자로 잘못 알려지면서, 그리고 소설(허구)과 사실을 혼동함으로써 허구가 사실로 둔갑되어 국민들에게 각인된 결과다. 그리고 이는 그의 죽음과 관련하여 과학적 태도를 적용하지 않고 작가의 상상력의 소산인 허구를 사실로 믿어버렸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외국의 정보기관이 이휘소 박사를 살해하려고 했다면, 많은 방법이 있을텐데 왜 하필 그렇게 실제로는 불가능한 방법을 택했을까? 왜 범인(운전자)이 바로 체포되는 그런 미련한 방법을 택했을까? 그리고 이휘소 박사만 살해하고 동승하고 있던 가족들에게는 가벼운 상처만 입게 교통사고를 일으키는 일이 가능한가?라는 간단한 의문을 제기한다면 쉽게 이 박사를 정보기관이 살해했다는 것은 사실일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즉, 이휘소 박사의 죽음은 우연히 일어난 교통사고의 결과인 것이다.
과학적 태도란 매사에 의문을 제기하고,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각종 믿을만한 증거를 찾아보고, 충분한 근거 자료에 의해 판단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과학적 사고 과정을 거쳐 “소설 속 주인공이면서 실제인물이라고 알려진 이 박사를 정보기관이 교통사고를 가장해 살해했다는 것은 단지 작가의 상상력의 소산일 뿐 사실은 아니다.” 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 과학적 태도라 할 수 있다.
이제 필자는 지난 1월 28일 본보 '목요세평'에서 주장했던 내용을 다시 한 번 상기하고자 한다.
우리는 어떤 주장에 접할 때 그것이 합리적 근거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 늘 생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고, 따라서 늘 잘못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옳고 그름의 판단의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나는 과학적 태도를 적용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는다. 즉, 최대한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여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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