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삼오오 모인 학생들이 “계엄군 물러나라”라는 구호를 간간이 외쳤지만 평소와 다를 것 없이 평온하던 금남로였다.
하지만, 이 고요함은 잠시뿐이었다. 갑자기 금남로 1~5가에 빼곡히 진을 있던 계엄군 수백여 명이 시민과 학생에게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이씨는 “군인들이 소총 개머리판, 군홧발, 대검 등을 휘두르며 무차별 린치를 가하기 시작했다”며 “여기저기서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피를 흘리면서 쓰러지는 자가 셀 수 없었다”고 그날의 끔찍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군인들에게 머리, 가슴 등 온몸을 구타당한 이씨는 광주 상무대의 군부대로 연행됐다. 머리가 찢어지는 등 심한 부상을 입었지만 군인들은 이씨를 치료해 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곳에서 “운동화를 왜 신고 있었느냐? 데모하러 나온 것 아니냐?”라고 묻는 군 수사관들에게 사흘 동안 시달리고 나서야 귀가할 수 있었다.
이씨가 석방된 21일, 광주 시민들은 무자비한 계엄군 진압에 맞서기 위해 무장하기 시작했다.
계엄군으로부터 내 아들, 딸, 가족을 지키려면 무장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계엄군의 발포도 시작되면서 광주의 비극은 절정에 다다랐다.
1987년 대전으로 올라와 정착한 이씨의 바람은 소박하다. “민주화의 초석이 된 5·18항쟁이 젊은 세대 등에게 단순한 사건 정도로만 여기는 것이 씁쓸하다”며 “5·18이 이 땅의 민주화에 한 획을 그은 역사적인 일로 기억됐으면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현재 대전, 충청권에는 이씨처럼 5·18항쟁에 직접 참여했거나 이와 관련된 일을 했던 85명으로 구성된 '5·18 유공자동지회 대전충청지부'가 설립돼 있다.
이 단체는 18일 오전 10시 대전시청 세미나실에서 5·18 민주항쟁 30주년 기념 대전·충남 기념식을 갖는다.
/강제일 기자 kangje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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