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13세기 영국. 로비 롱스트라이드는 십자군 전쟁에 뛰어들어 혁혁한 공을 세운다. 리처드 왕이 전사하자 로빈은 동료들과 탈출해 영국으로 돌아온다. 로빈은 자신의 아버지가 자유를 위해 왕권에 맞서 싸우다 죽음을 맞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존 왕의 폭정에 맞서게 된다.
우리가 아는 로빈후드는 영국 셔우드 숲을 무대로 귀족이나 영주들이 왕에게 바치는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서민들에게 나눠주는 의적이다. 리들리 스콧 감독이 새로 만든 ‘로빈후드’는 그런 로빈후드는 잊으라고 말하는 영화다. 당연히 쫄쫄이 타이즈도 벗었다.
스콧 감독이 자신의 스타일로 변주해낸 로빈후드 이야기는 이렇다. 그의 본명은 로빈 롱스트라이드다. 뛰어난 활솜씨를 지녔고 ‘사자왕’ 리처드의 십자군 원정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다. 활만 잘 쏘는 게 아니다. 영주들을 규합해 프랑스군을 격퇴하는 리더십도 있고, 역사 속 대헌장(마그나카르타)을 존 왕이 승인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다. 한마디로 국민 영웅이다. 결국 ‘로빈후드’는 국민 영웅이 왜 무법자, 즉 의적이 되었을까, 그 이야기를 들려준다. ‘로빈후드: 더 비기닝’인 셈이다.
스콧 감독은 이 이야기를 거대한 스펙터클로 담아냈다. 프랑스 성에서 벌어지는 초반 전투장면과 하이라이트인 대규모 해상 전투 장면은 아드레날린이 마구 솟구칠 만큼 역동적이다. 영국 웨일즈와 프레시워터 해변에서 촬영한 이 장면은 수백 마리 말과 수레, 해안을 꽉 채운 300여대의 상륙용 전함을 동원해, ‘라이언일병 구하기’의 초반 상륙작전 장면을 방불케 하는 실감 액션으로 탄생했다. 액션뿐 아니라 멜로, 드라마 등도 장르영화의 법칙에 따라 적절하게 배치돼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이 지루하지 않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면 별로 남는 게 없다. 너무 많은 것을 담아내려한 탓이다. 전쟁신을 곳곳에 배치하고 방황하는 로빈의 내면에, 이성과의 로맨스에, 아버지 죽음에 대한 복수에, 자유에 대한 갈망에 이르는 과정을 순서대로 나열해 보여주지만 서사는 방만한데 가슴을 때리는 ‘한방’이 없다. 리들리 스콧 감독이 아끼는 단짝 러셀 크로는 낮은 목소리로 힘 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매력적이긴 하지만 새롭진 않다. 타이즈를 벗고 거칠어진 새 로빈후드는 그전보다 매력적이지도 않다.
스펙터클은 굉장하고 비주얼은 빛을 발하지만 거기까지다. ‘글래디에이터’를 넘어서려면 한참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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