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수찬 목원대 교수 |
그러나 우리의 축제는 어떤가? 한국의 축제 속에 인간 신명의 회복이 있는가? 아니면 인간 공동체의 회복이 있는가? 현재 대전·충남 지역에는 수많은 봄꽃 축제가 열리고 있다. 유성구 5월 눈꽃 축제, 동학사 봄꽃 축제, 금산 비반고을 산꽃축제, 서천 동백꽃 주꾸미축제, 당진 순성매화·벚꽃 축제, 청양 칠갑산 봄꽃축제 등이다.
여기서 언급한 봄꽃 축제들은 지방정부의 기획 작품들이다. 절제와 규율의 미학은 보이지만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 한판의 신명, 그리고 집단적 카타르시스는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다. 현재 지방정부에 의해 주도되는 축제들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정부에 의한(by the government), 정부를 위한(for the government), 그리고 정부 공무원의 (of the government) 축제다. 지방정부 공무원들이 창안하고, 기획하고, 정부가 예산을 내고, 정부가 홍보를 해서 시민들에게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한다. 대전에는 16개의 축제가 있고 서울에는 141개의 축제가 열린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의 축제는 국가주도로 이루어진다.
미국 미시간 대학이 위치한 앤아버(Ann Arbor)로 가보자! 앤아버의 예술축제(Art Fair)는 축제의 전형적인 미국 버전(version)이다. 아예 지방정부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시민들이 구성한 예술축제 위원회(Art Fair Committee)에서 아이디어 회의가 열리고, 참가자 신청이 이어지고, 참가자와 지역 비즈니스가 비용조달을 한다.
위원회가 페스티벌을 홍보를 하지만 많은 비용을 들일 필요가 없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들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축제과정에서 엔터테인먼트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를 즐긴다. 축제기금을 기부하고, 자발적 봉사를 하고, 함께 모여서 춤을 추면서 앤아버의 시민이 된다. 축제의 중심에 정부가 아니라 시민이 있고 시민들의 노블 아이디어(noble idea)가 빛난다. 축제는 앤아버의 보편적 이웃감정을 북돋아 주는 주사약(booster)같은 것으로 기능한다.
이번에는 스웨덴의 웁살라(Uppsala) 여름축제(Midsummer Festival)로 가보자! 축제의 북유럽 버전은 아메리칸 버전과 거리가 멀다. 축제가 시민들만의 홀로 잔치가 아니라 지방정부와 시민이 공동으로 조직하는 잔치다. 국가는 재정과 전문성, 관료적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축제전체를 오케스트라하지 않는다. 축제의 주체는 시민들이다. 여름 축제 위원회에는 각계를 대표하는 시민들로 이루어지고 지방정부 관료가 참여하지만 정부지원 내용 이외에는 크게 발언하지 않는다. 시민들이 축제를 창안하고 기획한다. 공연의 주관석에도, 무대에도, 그리고 관중석에도 정부는 보이지 않고 시민들만이 있다.
이제 우리의 지방정부도 어떻게 축제를 조직할 것인가를 고민할 시기가 되었다. 축제의 사회학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겠다. 축제가 시민들의 신명의 회복이고, 집단적 카타르시스이고, 나아가서 공동체의 복원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시민들에 의한 축제가 되어야 한다. 시민을 대상화시키거나 소외시킬 때, 축제의 본래기능은 상실되고 실체 없는 정부만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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