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정산 대전대 교수·시인 |
그런데 최근 집권당의 한 국회의원이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코미디 프로의 대사가 맘에 들지 않는다는 압력성 발언을 해당 방송국 사장에게 해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일이 있었다. 권력이 언론을 장악하고 통제하려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이 발언에 그대로 깔려있다는 점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사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이 점에 대해서는 벌써 수많은 비판과 비난을 받아왔기에 더 이상 언급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된다.
다만 그가 왜 그렇게 그 대사에 기분이 나빴을까를 한번 생각해 보았다. 어찌 보면 못난 사람들의 푸념이고 신세타령일 그런 대사에서 불온한 의미를 간취한 그 예리한 감각에 섬뜩한 두려움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아마 그 의원은 스스로를 일등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방송인으로 잘 나가다가 집권당 국회의원이 되었으니 사회에서 최고의 위치에 도달했다고 자부할 만하다. 그런데 그런 일등들을 함부로 저주하는 프로가 그의 심기를 건드렸던 모양이다. 노력해서 자신 같은 일등을 할 생각은 하지 않고 일등이 대접받는 세상을 비난하다니 그것은 좌파나 하는 짓이고 그런 대사가 방송에서 말해지고 있다는 것은 아직도 좌파 시절의 잔재가 횡행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냐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물론 일등은 대접받아야 한다. 일등이 되기 위해 들였을 노력에 대한 보답이기도 하고 그 일등이 가진 능력이 사회에 많은 유용성을 가져오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이런 보답과 보상이 있기에 사람들은 노력을 하고 그에 따라 세상은 발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등만을 위한 세상은 좋은 세상이 아니다. 일등만 사람 대접받고, 일등만 기억되고, 일등만 인정되는 세상은 일등을 뺀 대다수를 불행하게 하는 지옥이고 꼴찌 사회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가 그런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 다른 사람을 짓밟고서라도 일등이 되기 위해 혈안이 되고 있다. 그래야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남보다 먼저 출세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낙오자가 된다는 강박 속에서 이 땅의 젊은이들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그리고 얼마 전에 있었던 고려대 김예슬양의 자퇴 선언은 이런 현실에 대한 강렬한 문제제기다.
이렇게 된 것은 일등들이 일등만을 위한 세상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일등들이 꼴찌들을 멸시하고 자기들만의 세상을 만들 때 꼴찌들이 저항을 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웃자고 만든 코미디이지만 그 대사에는 이런 저항이 들어 있다. 그런데 이런 소극적인 저항에까지 재갈을 물리겠다니 그것은 시대를 거꾸로 돌리는 일이고 이는 필시 더 큰 반작용을 불러일으키게 된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이렇게 보았을 때 일등이 되지 못한 꼴찌들의 한탄이 세상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꼴찌들을 무시하고 꼴찌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일등들만의 독주가 세상을 불안하게 만든다. 불온한 것은 '일등만을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코미디 대사가 아니라 그 대사가 마음에 안 드니 빼라고 말하는 그 의원의 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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