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문경은 영화평론가인 선배 중식과 만나 청계산을 오른다.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다 둘 다 얼마 전 통영을 다녀왔음을 알게 된다. 둘은 통영에서 겪었던 “좋은 얘기만 하자”며 술잔을 기울인다. 문경과 중식은 끝내 모르지만 둘은 실은 그곳에서 같은 식당을 드나들고 같은 사람들을 만났다.
‘하하하’의 흐름은 이전 작품과 다르지 않다. 한 남자가 여행을 떠나고 여행지에서 여자를 만나고, 삼각관계에 얽히고, 밀고 당기고 다가갔다 멀어지고, 화를 내고 술 마시고 하다가 결국 섹스에 성공한다. ‘하하하’는 여기에 숨겨놓은 여자와 벌이는 다른 남자의 닭살 애정행각을 곁들여 놓는다.
홍상수식 유머는 갈수록 깊이를 더한다. 소소한 일상의 한 단면을 포착해 속물근성을 까발리고 과장하면서 웃음을 이끌어내는 홍상수의 장기는 노련해지고 깊어졌다. 이전 영화에서 지질하던 남자들은 더 지질해졌고, 여자들은 당당한 속물이 돼간다. 지질남과 속물녀들이 얽히고설키는 연애담은 흥미진진하고 포복절도할 웃음을 선사한다. ‘한 성깔’하는 인물들이 삐지거나 버럭 화를 내는 장면에선 예외 없이 웃음이 터진다.
홍상수 감독은 사소한 일상에서 길어 올린 장면과 대사를 자신만의 시각으로 재구성해 보편적 정서를 이끌어내는 재주가 탁월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극히 한국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는데도 해외에서 호평을 받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홍 감독은 영화를 통해 ‘남들이 가르쳐준 이미지가 아니라 자신의 눈으로 사물을 보라’고 자주 강조해왔다.
‘하하하’도 예외가 아니다. 두 남자, 문경과 중식은 같은 시기 따로따로 통영을 다녀온 이야기를 서로에게 들려준다. 둘은 모르지만, 실은 두 사람은 같은 사람들을 만나고 왔다. 문경의 어머니는 중식에겐 음식 잘하는 식당주인 아주머니다. 문경이 짝사랑하는 여자는 중식에겐 시를 쓰는 후배의 애인이다. 같은 사람도 서로에게 의미가 다르듯 사물도 그렇게 자신의 눈으로 보라는 거다. 어찌 보면 철학적일 수도 있는 어려운 메시지를 우리 일상을 곁들여 쉽게 풀어주는 거, 그게 홍상수 영화다.
때문에 홍상수 영화를 볼 땐 어떤 이야기로 무슨 메시지를 전하려 할까, 하는 생각으로 보게 된다. ‘하하하’의 메시지는 이순신 장군이 등장하는 시퀀스에 담겨 있다고 여겨진다.
“저 근데 그게 뭔지 모르겠는데요.”
“원래 모르는 거야. 그냥 다르게 좀 느끼고, 그리고 감사하면 그게 끝이야. 훈련하는 셈치고 매일 시를 한번 써봐라. 예쁜 시를 매일 한편씩 써봐.”
“아, 그러면 있는 그대로를 보게 되는 거… 뭐, 그런 겁니까?”
“아니지.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게 아니지. 그런 게 어딨냐? 생각을 해봐.”
“그럼 장군님은 지금 뭘 보십니까. 이 나뭇잎에서 구체적으로 뭘 보고 계십니까.”
“난 좋~은 것만 본다. 항상 좋~은 것만 보고 아름다운 것만 보지. 사람들에게서도 좋은 점만 본다. 어둡고 슬픈 걸 조심해라. 그 속에 제일 나쁜 것이 있단다.”
그렇다. ‘하하하’는 행복에 대해서 말한다. 행복해지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항상 좋은 것만 보고 아름다운 것만 보라는 거다. 그것도 남의 생각으로 보지 말고 내 눈으로 보라는 거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의 질문. 그는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윤리학이 해야 하는 실천 중 첫 번째로 “어떻게 즐거운 정념의 극한에 도달해서, 그로부터 자유롭고 능동적인 감정으로 이행할 것인가”하고 물었다. 홍상수의 대답이 멋지지 않는가. 홍상수는 그 대답을 우리 일상을 빌려와 아주 쉽게 풀어서 들려준다.
행복해지려면 또 제목 ‘하하하’가 비록 여름 하(夏)자를 세 개 겹쳐 쓴 거라고 해도, 제목처럼 “하하하” 웃으라고 들려준다. 영화를 보면서 마음껏 웃어젖히는 것도 포함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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