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하하하]홍상수가 들려주는 ‘행복의 조건’

  • 문화
  • 영화/비디오

[영화-하하하]홍상수가 들려주는 ‘행복의 조건’

■ 하하하 감독: 홍상수. 출연: 김상경, 유준상, 문소리, 예지원.

  • 승인 2010-05-06 23:00
  • 신문게재 2010-05-07 12면
  • 안순택 기자안순택 기자
<줄거리>
영화감독 문경은 영화평론가인 선배 중식과 만나 청계산을 오른다.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다 둘 다 얼마 전 통영을 다녀왔음을 알게 된다. 둘은 통영에서 겪었던 “좋은 얘기만 하자”며 술잔을 기울인다. 문경과 중식은 끝내 모르지만 둘은 실은 그곳에서 같은 식당을 드나들고 같은 사람들을 만났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소리 내어 웃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제목 ‘하하하’를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홍상수 영화가 달라지긴 했다. 훨씬 가벼워지고 유머도 훨씬 풍성해졌다. 그렇다고 해도 스토리텔링은 그대로다. 우리가 속에 꽁꽁 감춰놓은(혹은 잊고 살았던) 속물근성(혹은 위선)을 까발려놓고는 조롱해댄다. 관객의 입장에선 얼굴 들기 부끄러운 속내를 들킨 기분인데 “하하하”, 하고 웃을 수 있을까. “허허허”나 “낄낄낄”이라면 또 모르겠다.

‘하하하’의 흐름은 이전 작품과 다르지 않다. 한 남자가 여행을 떠나고 여행지에서 여자를 만나고, 삼각관계에 얽히고, 밀고 당기고 다가갔다 멀어지고, 화를 내고 술 마시고 하다가 결국 섹스에 성공한다. ‘하하하’는 여기에 숨겨놓은 여자와 벌이는 다른 남자의 닭살 애정행각을 곁들여 놓는다.

홍상수식 유머는 갈수록 깊이를 더한다. 소소한 일상의 한 단면을 포착해 속물근성을 까발리고 과장하면서 웃음을 이끌어내는 홍상수의 장기는 노련해지고 깊어졌다. 이전 영화에서 지질하던 남자들은 더 지질해졌고, 여자들은 당당한 속물이 돼간다. 지질남과 속물녀들이 얽히고설키는 연애담은 흥미진진하고 포복절도할 웃음을 선사한다. ‘한 성깔’하는 인물들이 삐지거나 버럭 화를 내는 장면에선 예외 없이 웃음이 터진다.

홍상수 감독은 사소한 일상에서 길어 올린 장면과 대사를 자신만의 시각으로 재구성해 보편적 정서를 이끌어내는 재주가 탁월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극히 한국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는데도 해외에서 호평을 받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홍 감독은 영화를 통해 ‘남들이 가르쳐준 이미지가 아니라 자신의 눈으로 사물을 보라’고 자주 강조해왔다.

‘하하하’도 예외가 아니다. 두 남자, 문경과 중식은 같은 시기 따로따로 통영을 다녀온 이야기를 서로에게 들려준다. 둘은 모르지만, 실은 두 사람은 같은 사람들을 만나고 왔다. 문경의 어머니는 중식에겐 음식 잘하는 식당주인 아주머니다. 문경이 짝사랑하는 여자는 중식에겐 시를 쓰는 후배의 애인이다. 같은 사람도 서로에게 의미가 다르듯 사물도 그렇게 자신의 눈으로 보라는 거다. 어찌 보면 철학적일 수도 있는 어려운 메시지를 우리 일상을 곁들여 쉽게 풀어주는 거, 그게 홍상수 영화다.

때문에 홍상수 영화를 볼 땐 어떤 이야기로 무슨 메시지를 전하려 할까, 하는 생각으로 보게 된다. ‘하하하’의 메시지는 이순신 장군이 등장하는 시퀀스에 담겨 있다고 여겨진다.

이순신 장군은 문경에게 “네 머릿속의 남의 생각으로 보지 말고 네 눈을 믿고 네 눈으로 보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문경은 그 말을 이해하기 어렵다.

“저 근데 그게 뭔지 모르겠는데요.”

“원래 모르는 거야. 그냥 다르게 좀 느끼고, 그리고 감사하면 그게 끝이야. 훈련하는 셈치고 매일 시를 한번 써봐라. 예쁜 시를 매일 한편씩 써봐.”

“아, 그러면 있는 그대로를 보게 되는 거… 뭐, 그런 겁니까?”

“아니지.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게 아니지. 그런 게 어딨냐? 생각을 해봐.”

“그럼 장군님은 지금 뭘 보십니까. 이 나뭇잎에서 구체적으로 뭘 보고 계십니까.”

“난 좋~은 것만 본다. 항상 좋~은 것만 보고 아름다운 것만 보지. 사람들에게서도 좋은 점만 본다. 어둡고 슬픈 걸 조심해라. 그 속에 제일 나쁜 것이 있단다.”

그렇다. ‘하하하’는 행복에 대해서 말한다. 행복해지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항상 좋은 것만 보고 아름다운 것만 보라는 거다. 그것도 남의 생각으로 보지 말고 내 눈으로 보라는 거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의 질문. 그는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윤리학이 해야 하는 실천 중 첫 번째로 “어떻게 즐거운 정념의 극한에 도달해서, 그로부터 자유롭고 능동적인 감정으로 이행할 것인가”하고 물었다. 홍상수의 대답이 멋지지 않는가. 홍상수는 그 대답을 우리 일상을 빌려와 아주 쉽게 풀어서 들려준다.

행복해지려면 또 제목 ‘하하하’가 비록 여름 하(夏)자를 세 개 겹쳐 쓴 거라고 해도, 제목처럼 “하하하” 웃으라고 들려준다. 영화를 보면서 마음껏 웃어젖히는 것도 포함해서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백석대·백석문화대, '2024 백석 사랑 나눔 대축제' 개최
  2. 한기대 생협, 전국 대학생 131명에 '간식 꾸러미' 제공
  3. 남서울대 ㈜티엔에이치텍, '2024년 창업 인큐베이팅 경진대회' 우수상 수상
  4. 단국대학교병원 단우회, (재)천안시복지재단 1000만원 후원
  5. 남서울대, 청주맹학교에 3D 촉지도 기증
  1. 1기 신도시 첫 선도지구 공개 임박…지방은 기대 반 우려 반
  2. 올해 대전 분양시장 지형도 도안신도시 변화
  3. "전국 검객들 한 자리에"… 2024 대전시장기 펜싱대회 성료
  4. 대전 도시철도 2호선 트램 연내 착공 눈앞.. 행정절차 마무리
  5. 대덕구보건소 라미경 팀장 행안부 민원봉사대상 수상

헤드라인 뉴스


대전 분양시장 변화바람… 도안신도시 나홀로 완판행진

대전 분양시장 변화바람… 도안신도시 나홀로 완판행진

올해 대전 분양시장 지형도가 도안신도시로 변화한 분위기다. 대다수 단지에서 미분양이 속출했는데, 유일하게 도안지구의 공급 물량만 완판 행렬을 이어가며 수요자들의 높은 관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업계는 하반기 일부 단지의 분양 선방으로 기대감을 나타내면서도, 내년에 인건비와 원자잿값 상승, 제로에너지 건축물 인증 의무화 등으로 인한 분양가 상승을 우려하고 있다. 21일 부동산 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분양한 도안 2-2지구 힐스테이트 도안리버파크 2차 1·2순위 청약접수 결과, 총 1208세대(특별공급 제외) 모집에 1만3649건이 접..

"전국 검객들 한 자리에"… 2024 대전시장기 펜싱대회 성료
"전국 검객들 한 자리에"… 2024 대전시장기 펜싱대회 성료

대한민국 펜싱의 역사를 이어갈 원석을 찾기 위한 '2024 대전광역시장기 전국생활체육 펜싱대회'가 뜨거운 열기 속에 막을 내렸다. 시장배로 대회 몸집을 키운 이번 대회는 전국에서 모인 검객과 가족, 코치진, 펜싱 동호인, 시민 2200여 명이 움집, '펜싱의 메카' 대전의 위상을 알리며 전국 최대 펜싱 이벤트로 자리매김했다. 23~24일 대전대 맥센터에서 이틀간 열전을 벌인 이번 대회는 중도일보와 대전시체육회가 주최하고, 대전시펜싱협회가 주관한 대회는 올해 두 번째 대전에서 열리는 전국 펜싱 대회다. 개막식 주요 내빈으로는 이장우..

[현장]구청·경찰 합동 쓰레기집 청소… 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현장]구청·경찰 합동 쓰레기집 청소… 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속보>="내 나름대로 노아의 방주 같아…'나는 자연인이다' 이런 식으로, 환경이 다른 사람하고 떨어져서 살고 싶어서 그런 거 같아요." 22일 오전 10시께 대전 중구 산성동에서 3층 높이 폐기물을 쌓아온 집 주인 김모(60대) 씨는 버려진 물건을 모은 이유를 묻자 이같이 대답했다. 이날 동네 주민들의 오랜 골칫거리였던 쓰레기 성이 드디어 무너졌다. <중도일보 11월 13일 6면 보도> 70평(231.4㎡)에 달하는 3층 규모 주택에 쌓인 거대한 쓰레기 더미를 청소하는 날. 청소를 위해 중구청 환경과, 공무원노동조합, 산성동 자율..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