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罪人)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天痴)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으련다.
-서정주 ‘자화상’중에서-
자화상(自畵像).
뜻 그대로 풀이 하자면 스스로 자신을 그린 그림이다. 자화상을 그리는 데는 한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바로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거울 속 자신을 들여다보고, 그 속에서 진짜 나를 찾아내는 일은 생각만큼 녹록지 않다.
자학과 고뇌의 극복을 통해 자고(自高)를 추구했던 서정주 시인이나, 자기 자신을 알아버린 대가로 죽음을 맞게 된 나르시스처럼 자신을 아는 일은 자기도취 그 이상의 범주를 넘어선 고차원적 행위인 동시에 그만큼 위험한 행위다.
작가란 글로써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사랑을 그리고, 우정을 그리고 때로는 거짓과 미움을 그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작가가 그린 진짜 그림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 나는 가짜다 |
작품을 통해 자신의 본 모습을 은근히 드러냈던 작가들도 정작 단도직입적으로 '당신을 그려보시오'라는 주문에는 글문이 막혔던지 그들이 그린 그림과 글 속에는 몇날 며칠을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안정효, 이승하, 김기택, 박라연 작가처럼 인생의 궤적을 담담하게 서술하며, 비교적 사실적으로 자신의 얼굴을 그린 작가들의 자화상에는 지나온 세월만큼의 연륜이 묻어난다. 또한 자신의 얼굴이 편안하게 웃는 얼굴로 자리 잡혀가기를 소망하는 도종환 작가의 호탕한 웃음에서 비롯된 주름 잡힌 낯은 마음의 여유를 느끼게 해준다.
반면에 14년 전 일명 뽀샵의 힘을 빌린 확대된 눈망울과 갸름했던 턱 선을 못내 그리워하는 청순가련형 김다은, 선글라스와 스카프를 멋스럽게 코디하고 맨해튼 거리를 누비던 바람난 숫처녀 함정임, 항상 웃는 낯으로 살며, 남들 또한 웃길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웃기는 김종광처럼 스스로 마음에 들어 했던 지난날의 모습과 현재 자신이 좋아하고 또 앞으로도 보여 지고 싶은 모습을 그린 작가도 있었다. 윤후명 작가의 섬과 새, 박범신 작가의 머리에 얹힌 산에는 그들이 꿈꾸는 이상향이 드러나 있었고, 평생을 야한 여자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마광수 작가는 역시나 야한 여자의 모습에 투영된 자신을 그려놓고 '나는 다시 태어나면 야한 여자로 태어나고 싶다'라고 이야기 한다.
그런가 하면 자성의 목소리를 내는 작가들도 있었으니 투박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모습을 그려놓고, '손가락 사이로 몰래 엿보니 당신은 슬픈 표정이군요!'라고 말하는 장석남 작가나, 초식성에서 육식성으로 변하면서 얼굴을 통해 점점 발현되고 있는 숨겨진 욕망을 콜라주 기법으로 표현한 백가흠 작가, 자신의 내면은 한없이 비열하고, 음흉하고, 야비하고, 졸렬하건만 독자들은 옆집 아저씨 같은 편안한 인상에 속고 있다고 말하는 구효서 작가가 그들이다.
또한 '생각했던 거랑 다르시네요'라는 말을 인사처럼 듣는다는 스타일의 백영옥, 뱀장어 스튜의 권지예, 명랑하라 팜 파탈의 김이듬 작가는 작품에서 묻어나는 이미지와 실제 모습의 괴리에 조금은 불만 섞인 투정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손녀가 그려준 눈이 커다란 할아버지를 그려 놓고, '내 얼굴 나도 잘 모른다'라고 읊조린 김주영 작가처럼 대부분의 작가들이 자신의 얼굴을 잘 모르겠다고 손사래를 친 것을 보면 자신을 그리는 일은 표현을 업으로 삼고 있는 작가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던 듯 싶다.
항상 작품이라는 가면을 쓰고 대중을 만나는 작가들. 그들의 자화상을 통해 은연중에 배어난 내면을 살짝 엿보는 잔재미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