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좋은 언론일수록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여럿 만나서 취재하고 그들의 의견을 기사에 골고루 반영하려고 애쓴다. 객관성과 균형성을 갖춰 기사의 질을 끌어올리려는 노력이다. 한국의 언론 역시 취재원을 만나서 열심히 취재를 하고 취재원들이 제공한 정보가 기사에 배이도록 애쓴다. 그러나 연구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언론은 다른 나라의 언론들보다 취재원을 덜 사용한다. 반면 익명으로 처리되는 취재원은 다른 나라의 신문에 비해 훨씬 더 두드러진다. 따옴표로 처리되는 인터뷰 내용도 흔전만전하다. 익명의 취재원 인터뷰가 버젓이 따옴표로 처리돼 기사의 얼굴 제목으로 자주 떠오른다.
인터뷰 내용 중에서 일부를 직접 인용해가지고 제목으로 처리할 경우 기사의 사실성을 높일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어떤 사람이 무슨 말을 했건 혹은 그 말의 내용이 진실한지, 거짓인지의 여부를 떠나 그 사람이 그러한 발언을 한 사실은 실재로 존재한다. 무자비한 물리적 폭력을 일방적으로 자행한 사람이 언론을 상대로 '정의의 주먹'이었노라고 강변할 수 있다.
낭자한 폭력을 뒤집어 쓴 조금 작은 동네 주먹이 '주먹의 정의'가 부조리하다며 언론에 꼬아 바칠 수 있다. 뇌물수수 혐의를 받고 있는 현직의 군수가 '군민의 보금자리'에 쓸 요량으로 지역에 남아도는 미분양 아파트 한 채를 헌사 받았다고 말할 수 있다. 기차역의 노숙자가 거나하게 취해 '참새 다리에 공대공 미사일을 묶어 항공기를 격추시킬 수 있다'는 역전정담을 펼칠 수 있다. 지방선거 입후보자가 과학도시의 위상을 빛내기 위해서라며 '19세 이상 모든 시민을 달나라 여행'시켜주겠다고 떠벌릴 수 있다.
이러한 발언 모두가 누군가의 입을 통해 만들어진 '사실'이지만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거나 사안의 진실을 헤아리는 데 추레한 것들 뿐이다. 그래서 외국의 좋은 신문들은 가능하면 인터뷰한 발언 사실을 기사에서 줄이려 노력하고 '발언' 자체가 지대한 정보가치를 갖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여간해서 얼굴 제목으로 뽑아 쓰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이 언론의 신뢰를 확보하는 방법이라고 굳게 믿는다.
우리 언론들도 인터뷰 내용을 기사의 제목으로 사용하는 관행을 줄여야 한다. 매우 주관적인 인터뷰 내용 중의 일부를 직접 인용구 형식으로 제목에 쓸 경우, 더욱이 익명의 취재원이 제공한 인터뷰 내용을 자극적인 따옴표 제목으로 처리할 경우 짧은 순간 독자의 시선을 포박할 수 있지만 그것은 언론의 공정성에 대한 독자들의 믿음을 야금야금 갉아먹는다. 더더욱 해악스러운 것은 인터뷰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따옴표 처리조차 하지 않는 제목처리 방식이다. 그러한 제목처리는 단순한 과실을 넘어 독자들을 의도적으로 우롱하는 언론의 편집 흉기에 다름 아니다.
언론이 지방선거 입후보자들이 의도적으로 차려내는 말의 성찬을 단순 중계하는 “따옴표 저널리즘”의 전사가 되지 않기를 간곡히 바란다. 혹시 계족산을 통째로 누비고 다니며 산삼 자취를 찾으려는 독자들이 계실까봐 사족을 덧붙인다. 어젯밤 꿈 속에서 일어난 일이다. 계족산 자락에 올랐더랬는데 손을 뻗을 때마다 산삼이 뽑혔다. 열 뿌린가 스무 뿌린가 확실치 않아 이 글의 제목에다가 그냥 열다섯 뿌리라고 붙였을 뿐이다. 언론의 기사 제목이 이래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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