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 이어 30년째 배농사를 짓고 있는 김기산(논산) 기산농원 대표는 요즘 하늘을 쳐다보면 한숨이 먼저 나온다. 배꽃을 수정해 과실을 맺게 해야 하는데 기온이 낮아 꽃이 피지 않는데다 핀 꽃도 비나 서리가 자주 내려 수정을 할 수 없는 상태다.
김씨는 “30년 동안 농사를 지었지만 올해같은 경우는 처음”이라며 “착과 시기를 놓치면 올해 배농사는 손해가 불가피하다”고 걱정했다. 그는 “내년을 위해서라도 아직 포기할 수는 없지만 이같은 현상이 계속되면 농사를 지을 수 없다”고 말했다.
올 봄 계속된 이상기후로 피해가 모든 농작물로 확산되면서 농민들의 탄식이 깊어지고 있다.
일조량 부족으로 딸기 등 시설재배 작물 피해를 입은데 이어 저온 현상으로 배 등 노지(露地)재배 작물에도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배의 경우 4월 중순부터 배꽃이 피면 과실이 맺히도록 수정 작업을 해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평균 19~20도의 낮기온이 유지돼야 한다. 기온이 18도 이하로 떨어지면 꽃의 수정력이 급격하게 떨어져 과실이 성장하지 않는 등 피해가 발생하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들어 비가 내린 날이 많고 낮 기온이 평년보다 낮은 상태로 유지되면서 배꽃이 피지 못했다. 또 배꽃이 피더라도 수정에 필요한 암술이 얼어 죽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배 재배 농가들은 피해가 전체의 80%에 달한다고 입을 모은다.
서병도(61·금산)씨는 “배꽃의 암술이 죽으면 수정 기능이 없어져 수분을 해도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며 “배꽃이 피거나 암술이 모두 까맣게 죽은 경우가 열개 중에 여덟개가 넘는다”고 말했다.
또 오이도 성장이 원활하지 않고 들깻잎도 성장 속도가 떨어지면서 수확량이 20%정도 감소하고 있다. 꽃이 늦게 피고 기온이 낮아 꿀벌의 활동도 위축되면서 양봉 농가도 걱정이 늘어가고 있다. 이같은 피해는 모두 평년보다 낮은 기온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충남도와 기상청 등에 따르면 올 봄들어 일조시간은 평년 338.1시간보다 73%줄어든 247.1시간에 그쳤다. 기온도 크게 떨어져 금산 등 대부분 지역 낮 평균 기온이 15도를 밑돌았다. 금산의 경우 낮 최고기온도 20도를 넘긴 날이 5일밖에 되지 않는다. 다행히 냉해는 농업재해에 포함돼 있어 피해 농민들은 보상을 받을 수 있지만 5월에도 평년보다 낮은 기온이 유지될 것으로 예상돼 올해 농사 전체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이에 대해 도 관계자는 “저온 현상이 계속되면서 농가 피해가 우려돼 실태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며 “피해조사가 마무리되는대로 복구대책을 마련하고 일조량 부족으로 인한 피해 복구는 다음 주부터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28일 대전의 낮 최고기온이 역대 4월 하순 최저치를 경신했다. 대전지방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대전의 낮 최고기온(오후 4시 현재)은 6.7도로 과거 최저치인 2004년 4월 27일 10.4도보다 3.7도 낮았다.7.3도를 기록한 천안지역도 2004년 4월 27일 기록한 최저치 10.6도 보다 3.3도 밑돌았다. 또 서산(8.7도), 보령(9.9도), 부여(9.2도), 금산(9.0도) 지역도 과거 최고기온 최저치를 보다 낮게 관측됐다.
충북도 청주(8.2도), 충주(8.9도), 제천(7.2도), 보은(6.2도) 지역에서 역대 최저치를 갈아치웠다./이시우·강제일 기자 jabda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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