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호택 국제로타리 3680지구 총재 |
동국대학교 영문학과 교수인 오금동 박사는 아내와 대학원 동문이라는 관계로 알게 된 분이다. 처음 만날때부터 서로 친근감을 느꼈고, 오 박사는 공주에서 서울로 출퇴근을 하면서도 몸이 불편할 때마다 그것을 기화로 공주에서 금산에 있는 내 병원까지 방문해서 몇 마디 얘기를 나누곤 했다. 소아과 의사에게 고혈압 약을 처방받으러 굳이 한 시간씩 차를 몰고 금산까지 오기도 했다.
테니스와 검도를 즐기던 오 박사는 운동과 연구 외에는 가정에만 충실한 좋은 가장이었고, 진정한 인문학자의 길을 걷는 분이었다. 한양 남산에 살던 조선시대 선비정신의 화신이라고 얘기하는 딸깍발이의 모습을 나는 오 박사에게서 보곤 했다.
'달포 전에 학회 일로 몇 달 간 무리를 한 끝에 잠시 짬을 이용해 이른 봄비를 맞으며 테니스를 친 뒤 몸살 감기에 걸렸다'는 오 박사의 전화를 받았다. 이틀 후 찾아온 오 박사의 병세는 폐렴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하루 이틀 항생제를 써보고 안 되면 입원을 해야겠다고 조언을 해주었는데, 다음 날 더욱 증세가 악화된 오 박사는 대전의 한 대학병원에 입원을 했고, 중환자실에서 한 달 가까이 인공호흡기와 항생제, 그리고 질소치료를 비롯한 집중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유명을 달리 했다.
폐렴이 급성호흡부전증후군으로 진행되면서 악화되는 경우는 많이 있지만 나이가 많은 노인에게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젊은 사람에게는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진찰한 첫 날에 바로 입원을 권유했다면 살아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후회가 가슴을 때린다. 빈소에 놓인 영정은 너무 밝게 웃고 있었다. 고인의 환한 웃음을 보니 더욱 설움이 복받쳐 아내와 함께 통곡 했다.
흔히 인생은 20대 청춘이라고 얘기한다. 그렇지만 살아보니 용기와 패기가 넘치던 20대도 좋았지만 힘은 예전만 못하더라도 지혜가 조금 더 자라고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 더 넓어진 50대도 괜찮은 것 같다. '살아보면 어떤 나이도 다 좋다'는 말씀을 하시는 노인을 뵙기도 했다. 그래서 한창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할 나이에 먼저 간 안타까운 50대의 죽음은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먼저 간 이들이 살아온 뜻을 기린다면 그들의 길지 않은 삶이 더욱 값질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천안함으로 인해 잠시 주춤했던 선거가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하는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시절이 어수선할수록 현자(賢者)가 아쉬운 법이다. 이제는 유언이 되어 버린 '정치판에는 절대 들어가지 말라'는 오 박사의 충고를 이행하도록 노력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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