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놈의 꾀꼬리를 쫓아버려라. 가지 위에서 울지 못하게. 그 소리에 꿈 깨면 임 만나러 요서에 못 가니. 꿈에서라도 보고 지고. 그래, 당시만이겠는가. 뒤숭숭한 시국 탓인지 올봄엔 아직 [쪽박 바꿔주, 홀딱 자빠져] 우는 두견새를 못 보았다. 관능을 즐기는 객(客)의 귓전에 [홀딱 벗겨주]였을 그 소리.
이 소리의 정체는 뭘까. [팔딱 죠그죠그, 쪽박 바꽈 쥐고, 팔딱 자빠지고]. 조류도감의 묘사마저 이렇다. 성정과 흥에 따라 [호호 호호], [호로 호르륵], [호호 개?]. 휘파람새 소리를 호소로 듣건 교성으로 듣건 엿장수 마음. 귀 버리고 마음 버린다고 애써 귀 틀어막아도 그 사람 마음.
며칠 후면 5월. 5월이면 '홀딱벗고새'를 만난다. 본명은 검은등뻐꾸기. '라솔솔미' 음계로 [카카코코]거리는 이 철새 울음을 [홀딱벗고]나 [홀딱 자빠졌다], [홀딱 바꿔주]로 우긴다고 책하지 말 것. 수행 부족한 수행자에게 [빡빡깎고 밥만먹고]로, 신산한 사람살이에는 [카드꺾고 카드꺾고]로 들릴 것도 같다.
감정이입의 결과다. 파랑새와 백로처럼 색깔이 이름이 되고, 사는 곳 따라 바다오리, 솔잣새, 동박새, 바위종다리, 울음소리 따라 뜸부기와 뻐꾸기가 된다. 또 울음이되 [뻐꾹뻐꾹]은 새울음(Birdcall)이지만 종달새의 [쫑이쫑이]는 노랫소리(Bird song)이다. 딱따구릿과의 그것은 드러밍(Drumming)이고.
듣는 귀는 각(各)가지다. 진종일 [죽어죽어]라 애간장 녹는 주걱새를 이수광은 호사조(呼死鳥), 유몽인은 사거조(死去鳥)라 부른 차이의 절묘함을 뒤로 하고…. 이제 '하얀(白·백) 날개(翎·령)' 백령의 새울음은 경계음이며 애도음. 심청전 인당수의 무대 백령도는 노랑부리백로, 검은머리물떼새, 쇠가마우지 등 새들의 천국이다. 천안함 침몰 시점은 찌렁새가 울다 갔을 무렵이고, 곡조 가마우지는 [고옥고옥] 곡했겠다. 내 기억 속 노랑부리백로는 [과과], 검은머리물떼새는 [키키키키] 금속성이다.
듣고 싶은 소리. 술 거르는 주적성(酒滴聲), 미인의 옷 벗는 해군성(解裙聲)보다 버즈(벌의 날갯짓소리)와 트윗(새의 짹짹대는 소리)이 더 좋다. 비록 새벽닭 울면 잠 깨어 참새 소리에 하루를 열던 시절은 아니나, 어느 하루 운 좋게 참새 짹짹거림에 잠이 깨면 박재삼의 마음을 넌지시 훔친다.
“아, 저것들이 지저귀는 것이/ 울어울어 설움을 뱉는 것인지/ 기뻐서 마음 놓고 노래하는 것인지// 그것을 짚어 볼 도리가 없음이여.” 참으로 도리 없음이여. 봄 같지 않았거나 춘정을 못 느꼈거나 봄날은 가고 있다.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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