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영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이 대통령의 눈물을 보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눈물이 떠올랐다. 그는 2002년 대선 때 '눈물 광고'로 효과를 톡톡히 봤다. 당시 그의 볼을 타고 흘러내리던 굵은 눈물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있다. 그의 눈물은 선거 전략에 활용됐을지언정 연출된 것이 아니다. 쉽고 편한 길을 마다하고 가시밭길을 걸은, 그러면서도 밭을 탓하지 않는 농부임을 자처한 자신의 인생 역정을 회상하며 흘린 눈물이었다. 그 눈물은 몇 차례의 리허설을 거쳐 CF를 찍거나 TV 카메라 앞에서 프롬프터에 나온 원고를 읽으며 흘린 양지의 눈물이 아닌 음지의 눈물이었다. 그렇기에 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전후 독일 정치사에서 가장 매혹적인 인물로 꼽히는 빌리 브란트도 눈물의 수혜자다. 그는 총리 재임 중이던 1971년 폴란드를 방문했다. 당시 폴란드 국민들은 서독에 매우 적대적인 감정을 갖고 있었다. 일각에서는 브란트 총리의 폴란드 방문이 나치 시절 점령했던 곳을 되돌려 받으러 오는 게 아니냐고 비아냥거릴 정도였다. 브란트 총리는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 있는 나치 희생자 비석 앞에 섰다. 그리곤 비에 젖은 차가운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그의 눈에서는 뜨거운 참회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 장면을 TV 생중계로 지켜본 폴란드 국민들은 서독에 대해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브란트의 눈물이 먹힐 수 있었던 건 음지에서 쌓은 그의 진정성 덕분이었다. 그는 나치 시절 히틀러 정권에 항거하는 정치 활동을 했으며, 총리로 재임하는 동안 동구권 국가들과 화해하고자 동방정책을 실시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오늘날 독일 통일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는 자신이 나치 독재의 피해를 입은 망명자로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역사적 책임을 눈물로 대신한 것이다.
흔히 '참회'가 아닌 '위선'의 눈물을 '악어의 눈물'이라 부른다. 악어는 먹이를 삼킬 때 꼭 우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것은 자신의 먹이가 된 동물의 죽음을 슬퍼해서가 아니라 욕심을 부려 자기 입보다 훨씬 큰 고깃덩이를 삼키기 때문이다. 먹이를 입에 넣은 뒤 악어는 숨을 급히 들이쉬는 데 이때 눈물샘이 눌려 우는 것처럼 보인단다. 최소한 노무현과 브란트의 눈물은 악어의 눈물이 아니었다. 눈물 저편에 남모를 그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정성이 있었고 통할 수 있었다.
눈물은 그늘이다. 그늘 없는 눈물은 눈물이 아니다. 정호승 시인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그렇게 그늘과 눈물이 하나라고 말한다.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 나무 그늘에 앉아 /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 나무 그늘에 앉아 /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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