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물 처리반의 새로운 팀장으로 제임스가 부임한다. 전사한 전 팀장과 달리 제임스는 방호장비를 벗어던지고 폭발물을 제거하는 인물. 제임스의 독단적이고 돌발적인 행동은 팀원들을 극도의 불안과 공포에 몰아넣는다. 정작 제임스는 그런 위험천만한 상황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
폭발물 처리반(EOD) 팀장 제임스. 방호복으로 온몸을 감싼 그가 어기적거리는 걸음으로 천천히 폭발물에 다가간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300m 물러나 그를 지켜보는 병사들이나 객석의 관객들은 숨을 죽인다.
터질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긴장감에 손바닥에선 땀이 솟는다. 하지만 제임스는 흥미로운 장난감을 선물 받은 아이 같은 표정이다. 그의 눈은 호기심으로 반짝거리고, 그의 손은 사랑스럽게 폭발물을 어루만진다. 오프닝에 떠오르는 문구, ‘전쟁은 마약이다’란 말이 강렬하게 가슴을 파고드는 장면이다. 그렇다. 이 목숨을 건, 무시무시하고 아슬아슬한 긴장감에 그는 중독돼있다.
‘허트 로커’는 이라크전쟁에서 폭발물 제거 임무를 수행하는 특수부대 이야기다. 에둘러 설명하지 않는다. 2004년 바그다드 시내를 어지럽게 훑던 화면은 곧바로 관객을 전쟁의 한복판으로 끌고 간다. 그것도 가공할 위력의 폭탄 앞에 데려다놓고는, “꽝” 터뜨려버린다.
치솟는 화염, 돌멩이가 날아오르고 공기의 엄청난 휘몰아침과 땅 표면이 들리는 움직임까지 포착한다. 마치 폭발 현장에 서있는 듯한 생생한 리얼리티는 그야말로 공포다. 무시무시한 공포의 전율에 등골이 서늘하다.
영화는 제임스라는 인물을 통해 인류사에 전쟁이 왜 끊임없이 계속되는지를 조명한다. 제임스는 사제폭탄을 873개나 해체한 폭발물 제거의 최정예다. 그는 “어떻게 그 많은 것을 처리했느냐”는 상관의 질문에 “죽지 않으면 된다”고 간단하게 대답하는 인물이다. 그렇다고 그가 호전적인 사람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시끄러운 록음악과 담배와 술에 절어있는 그는 전쟁의 참상에 종종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하지만 폭발물 앞에 서면 다른 사람이 된다. 혐오와 매혹을 동시에 느끼는 불안정한 영혼. 캐서린 비글로 감독은 제임스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으면서 전쟁에 중독돼 뒤틀려버린 영혼을 통해 전쟁의 광기를 고발한다. ‘허트(hurt)’는 고통이나 부상을 뜻하고, ‘로커(locker)’는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을 가리킨다. 제임스는 갇혀있다.
처리반이 폭발물을 하나씩 해체해나갈 때마다 폭탄의 규모와 잔인함의 세기도 점점 커진다. 급기야 인간 폭탄까지 등장한다. 생사의 갈림길에 선 등장인물들, 그들의 불안과 혼돈에 철저하게 관객이 감정이입하도록 연출한 비글로의 솜씨는 감탄스럽다. 이 섬세하고 솜씨 좋은 연출에 아카데미도 감독상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다큐멘터리 같은 영상도, 심장을 쥐어짜는 사운드도 좋다. 전 남편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를 물리치고 아카데미 감독상 작품상을 휩쓸었을 때, 비글로는 “이 영화를 전 세계에서 매일처럼 목숨을 걸고 일하는 모든 군인에게 바치고 싶다. 그들이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했다. 그들은 둘째 치고 제임스는 과연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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