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유능한 방송작가 지숙에겐 세상에서 우리 딸이 제일 예쁘다는 엄마가 있다. 그런 엄마가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론 미운 지숙은 초보맘이 되면서 엄마의 마음을 조금이나 알게 된다. 어느 날 지숙은 엄마에게 내려가 효녀 노릇을 하고 예전 같지 않은 딸의 행동에 엄마는 불안감을 느낀다.
지난해 문화계엔 엄마 열풍이 불었다.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와 영화 쪽에선 최강희 김영애 주연의 '애자'가 엄마 바람을 일으켰다. 연극 쪽에선 강부자 전미선이 열연을 펼친 '친정엄마와 2박3일'이 보는 이들의 눈물을 쏙 빼놓았다. 영화 '친정엄마'는 이 '친정엄마와 2박3일'을 스크린에 옮겨 뜨거운 바람에 불을 지핀다.
이들 엄마 작품은 공통적으로 소소한 일상을 그린다. '시한부 삶'이란 극적인 장치가 없는 건 아니지만 소소한 일상을 그림으로써 보는 이들로부터 “그래, 나도 그랬지”, 하는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극중 못난 자식과 동화시킨다. '친정엄마'도 화려한 볼거리나 특별한 이야기는 없다. 심심하고 반복적이지만 엄마와 딸 사이에 있을 법한 에피소드를 풍성하게 담아 공감의 폭을 넓혀놓았다.
지숙의 내레이션으로 그녀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영화는 시작한다. 장면은 지숙의 성장과정을 따라가지만 보여주는 건 '아낌없이 주는' 엄마다. 남편은 안 챙겨도 자식만큼은 꼭 챙기고, 무겁다고 안 가져가겠다고 해도 제 손으로 만든 반찬을 먹이려 들려 보내는 엄마를 지숙은 미워하고, 고마워하고 그리고 미안해한다. 내 자식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여기는 엄마. 한 고집하고, 속 정 깊은, 딸의 결혼을 위해서라면 사돈 앞에서 기꺼이 무릎을 꿇는, 청국장 냄새 물씬한 정말 징글징글한 한국적인 엄마다. 회상이 끝날 무렵, 기차가 고향에 도착하고, 엄마와 보내는 마지막 2박3일 이야기의 막이 오른다.
김해숙과 박진희. 영화는 이 두 배우에게 오롯이 의지한다. 김해숙은 웅숭깊은 정의 연기로 평범하면서도 딸의 아픔조차 자신의 탓으로 여기는 징글징글한 엄마를 풀어낸다. '엄마 전문배우'라고 불리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그간 활달한 청춘을 주로 연기했던 박진희도 가벼움을 덜어내고 호소력 짙은 연기로 호흡을 맞춘다.
죽음을 앞둔 딸과 엄마가 보내는 시간은 가슴이 먹먹해지고 콧등을 시큰하게 만든다. 하지만 유성엽 감독은 신파에서 발을 빼려 애쓴다. 담담한 태도를 유지하려 하고, 지숙의 투병생활을 보여주지 않는 것도 신파에 빠지는 걸 막기 위한 전략일 것이다. 그래도 사진관에서 두 사람이 사진을 찍는 장면이나 지숙이 서울로 돌아가면서 엄마와 이별하는 기차역 장면은 눈물을 펑펑 쏟게 만든다. 한푼 두푼 모아둔 동전을 라면 봉지에 담아 전해주고, 신발이 벗겨지면서도 떠나는 기차를 따라 뛰는 엄마의 절규에 눈물 쏟지 않을 사람이 과연 있을까.
사족 한 가지. 푸념 같지만 엄마와 딸의 영화를 보고나면 남자들은 섧다. 자식을 엄마 혼자 키우는 건 아니지 않는가. '친정엄마'는 비록 몇 십초 안 되는 짧은 순간이나마 아버지의 속 깊은 정을 들려주는 배려(?)로 서러움을 달래준다. 가족끼리, 무엇보다 엄마와 딸이 손잡고 보면 좋을 영화다./안순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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