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형]잔인한 4월에 펼치는 작은음악회

  • 오피니언
  • 사외칼럼

[이연형]잔인한 4월에 펼치는 작은음악회

[NGO소리]이연형 천양원 원장

  • 승인 2010-04-21 14:12
  • 신문게재 2010-04-22 20면
  • 이연형 천양원 원장이연형 천양원 원장
194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영국의 시인 T S 엘리엇은 1922년 작품인 '황무지(The Waste Land)'에서 '4월은 잔인한 달(April is the cruelest month)'이라고 했다. 그는 이 시에서 황무지란 정신적 메마름, 인간의 일상적 행위에 가치를 주는 믿음의 부재, 생산이 없는 성(性), 그리고 재생(再生)이 거부된 죽음에 비유하려했다.

▲ 이연형 천양원 원장
▲ 이연형 천양원 원장
우리는 지금 잔인한 4월을 보내고 있음을 실감한다. 20여일 동안 백령도 앞바다에 침몰해 있던 천안함의 함미가 갈기갈기 찢겨진 채 수면 위로 떠오르고 그렇게도 살아 귀환하기를 염원했던 얼굴들이 주검으로 나타나자 대한민국은 통곡했다. 나는 충직하게 우리 바다를 지키던 천안함 해군용사들이 태극기에 감싸인 채, 함대사령부 안치실로 운구 될 때 마다 오열하는 유가족들의 애절한 통곡 소리에 눈물이 흐르곤 했다. 특별히 아버지를 잃은 어린 자녀들을 생각하니 더욱 그러했다.

나는 어린아이들에게 아버지 없는 슬픔이 얼마나 큰 것인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정이 해체되어 부모와 함께 살지 못하고 시설에서 양육 받아야 하는 아동·청소년들은 마음 한 구석에 항상 상실감을 지니고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실감이 분노나 적대감으로 변형되지 않고 안정된 정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시설의 지도자들은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활용하여 부단히 애쓰고 있다. 음악을 통한 정서지도는 대단히 좋은 방법의 하나다.

거친 성품을 치유하기 위해 31년 전, 미국인 고 몬시뇰 신부가 '부산 소년의 집'에 오케스트라를 창단한 것은 그런 맥락에서일 것이다. 지난 2월 11일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세계적인 공연장 카네기 홀에서 그들이 세 차례의 커튼콜을 이끌어 내면서 성공적인 공연을 이룩했다는 뉴스를 보고 부러움과 함께 그들의 쾌거에 힘찬 박수를 보낸바 있다. 이제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씨와 그의 아들 정민씨가 지도하고 있으니 더욱 발전하리라 믿는다. 이번 경험으로 그들은 일생동안 대단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우리 시설은 2년 전 25명의 아이들로 관현악 합주단, '하늘소리 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 나는 우리 아이들도 언젠가는 부산 소년의 집 아이들의 기량을 발휘할 날이 오리라 확신하고 오는 24일 평송청소년문화센터에서 연주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요즘 매일저녁 지휘자 홍순구씨의 지도에 아이들은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고 있다. 사자왕의 행진/수닭과 암탉/거북이/코끼리/백조 등 동물들을 주제로 만들어진 '동물의 사육제'를 연주할 때는 동물의 특성을 악기로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에 몹시도 신기해하는 모습이다. 바이얼린을 연주하는 초등학교 5년생 막내 송현준군과 이상준군은 연습하기 힘들지만 참 재미있어 한다. 중2년생 박준 군은 앞으로 음악가가 될 자질을 인정받게 되었다.

이번 음악회는 후원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을 비롯하여 기관 단체들과 시민들에게 그동안 도움에 감사하며, 시설 아이들이 바람직한 인격과 건강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관현악 합주는 지휘자의 지시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연주를 해야 한다. 연주자들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조화를 이룰 때 가장 아름다운 소리가 나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의 이번 연주는 미흡한 수준이지만 연륜을 쌓아 가면 이러한 높은 경지에도 오를 수 있을 것이다.

4월은 정말 잔인한 달인가! 이번 희생자들을 구하려다 숨진 고 한주호 준위를 비롯한 38명의 전사자, 8명의 실종자들은 가족들과 온 국민들의 가슴속에 큰 슬픔을 주었지만, 결코 헛된 희생이 아니었으며 또한 그들의 희생은 더 강한 우리 군을 만드는 초석이 될 것이다. 하늘동산 친구들도 모든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마음을 음악으로 전하고자 한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상명대, 제25회 대한민국 반도체설계대전 'SK하이닉스상' 수상
  2. 충남대병원, 만성폐쇄성폐질환 적정성 평가 1등급
  3. 생명종합사회복지관, 제15회 시가 익어가는 마을 'ON마을축제'
  4. 서구 소외계층 60가정에 밑반찬 봉사
  5. 샛별재가노인복지센터 생태로운 가을 나들이
  1. [날씨] 단풍 절정 앞두고 이번 주말 따뜻한 날씨 이어져
  2. 한국건강관리협회, 창립 60주년 6㎞ 걷기대회 개최
  3. 대전 노은지구대, 공동체 치안 위해 '찾아가는 간담회' 실시
  4. 찾아가는 마을돌봄서비스 ‘마음아 안녕’ 활동 공유회
  5. 외출제한 명령 위반하고 오토바이 훔친 비행청소년 소년원행

헤드라인 뉴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 대전에 집결한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 대전에 집결한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이 대전에 집결한다. 대전시는 '2025년 중소기업융합대전'개최지로 25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올해 행사에서 대회기를 이양받았다. 내년 대회는 대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다. '중소기업융합대전'은 중소기업융합중앙회 주관으로 중소기업인들 간 업종 경계를 넘어 교류하는 것이 목적이다. 분야별 협업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지역별 순회하는 화합 행사 성격도 띠고 있다. 2004년 중소기업 한마음대회로 시작해 2014년 정부 행사로 격상되었으며 2019년부터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공동으로 개최하고 있다..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의 한 사립대학 총장이 여교수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경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대학노조가 총장과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대학 측은 성추행은 사실무근이라며 피해 교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A 대학 지회는 24일 학내에서 대학 총장 B 씨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여교수 C 씨도 함께 현장에 나왔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C 씨는 노조원의 말을 빌려 당시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C 씨와 노조에 따르면, 비정년 트랙 신임 여교수인 C 씨는..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20대 신규 대원들 환영합니다." 23일 오후 5시 대전병무청 2층. 전국 최초 20대 위주의 자율방범대가 출범하는 위촉식 현장을 찾았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원한 신입 대원들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첫인사를 건넸다. 첫 순찰을 앞둔 신입 대원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맞은 편에는 오랜만에 젊은 대원을 맞이해 조금은 어색해하는 듯한 문화1동 자율방범대원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위촉식 축사를 통해 "주민 참여 치안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자율방범대는 시민들이 안전을 체감하도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장애인 구직 행렬 장애인 구직 행렬

  •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