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훔쳐보기]지하 깊은 곳 보물창고 '수장고'

미술관(미술관은 박물관과 같은 개념임)의 역사를 들어다보면 각 시대마다 기능과 역할은 변화를 거듭해 왔지만 각각의 사회와 시대에 그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유물이나 소장품을 각기 고유한 방식으로 수집하고 보존해 왔다. 미술관은 시간 속에 사라질 인류의 물질문명을 영구히 간직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의 산물인 것이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미술관(museum)이란 용어는 고대 그리스의 뮤제이옹(museion)이라는 단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뮤제의 집 혹은 뮤즈에게 헌납된 사원(the house of muse)'을 의미한다. 뮤제이옹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의 아홉 여신들의 '뮤즈의 신전'으로 그곳에 회화.조각 등의 조형예술, 역사와 철학의 학문적 성과, 보물들을 봉헌하였으며, 이것들을 보관하는 역할을 하였다.

오늘날 우리가 정의하는 미술관의 고전적인 기능을 처음 갖추었던 곳은 이집트의 왕 프톨레마이오스 왕이 부왕인 프톨레마이오스 소테르의 유언에 따라 부왕이 사용하던 물건과 예술품을 보관하기 위해 지은, 기원전 284년경에 완성된 뮤제이옹 알렉산드리아(Museion of Alexandria)이다. 이후 신전이나 왕실, 교회, 그리고 사원 등은 진귀한 보물이나 유물들을 수집하고 보관하는 일종의 박물관 역할을 하게 되었다.

미술관(museum)이란 용어는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상인이자 골동품 수집가인 메디치가의 로렌조 디 메디치(Lorenzo de Medici)가 진귀한 수집품을 서술할 때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왕실이나 귀족 등의 소수가 점유하였던 미술관은 시민혁명 이후 시민사회가 형성되면서 일반 대중에게 공개되며 비로소 현대적 개념의 미술관으로 이행하게 된다. 이와 같이 신전이나, 왕실, 귀족들의 개인소장품에서 시작된 미술관(박물관)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대중적인 교육기관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누구나 알고 있는 미술관의 역사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던 것은 바로 미술관은 미술품을 보관하는 장소로 시작되었음을 다시 한 번 상기하고자 함이다. 현재 세계 각국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많은 미술관(박물관)이 있는데 그 용도와 규모, 지리적 위치 등의 성격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그 위치나 규모 등에 따른 구분에 관계없이 미술관(박물관)은 수집 보존의 기능, 전시 보급의 기능, 조사 연구의 기능, 사회교육의 기능 등의 보편적인 기능을 갖추고 있다.

이중 미술관계자 외 일반인들의 대다수는 전시장 혹은 교육장만을 접촉할 기회만 제공되므로 미술관 내부에 보물창고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 미술관마다 보유하고 있는 값진 미술품들은 미술관 내부 깊숙한 곳에 자리한 수장고에 보관되고 있는 것이다. 미술관의 역할이 동시대인들과 함께 공유하고 후대의 유형자산으로 물려줄 소장품들을 보관해야 하는 주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기에 수장고는 건물 설계 시 전시장과 함께 가장 세심하게 계획되는 곳이다.

수장고는 작품 훼손의 최소화를 위해 24시간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외부로부터 오염물질이 들어오는 것을 방지함과 동시에 도난 방지를 위하여 이중 삼중의 출입문과 통제시설로 이루어져있다. 작품보존을 위한 수장고의 가장 적절한 온도(18℃(±5))와 습도(50%(±10%))를 유지하기 위하여 항온 항습기를 설치하여 가동하며, 천장과 바닥 및 벽면 전체는 습온에 강하고 미생물 번식을 억제하며 유해가스를 함유하지 않은 오동나무 등의 재료를 사용하고 방염처리를 하여 화재에도 견딜 수 있도록 내부 마감 재료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수장고에서의 작업은 2인 1조로 활동하게 하는 등 보안체계도 각별히 유지하며 지진에도 최대한 안전할 수 있도록 건물의 맨 아래쪽이 위치하고 있다. 각 미술관들은 보안체계를 위해 열쇠키, 카드키, 지문인식 등의 복합적인 잠금장치를 하고 있으며 수장고를 가는 길은 여러 단계의 문과 복도를 지나도록 되어 있어 관계자가 아니고는 접근하기 어렵게 하고 있다. 곳곳의 이동 사항들을 감시하는 센서와 CCTV, 화재경보장치 등이 설비되어 있으며 정전 시에도 내부의 기기들이 작동하도록 별도의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이렇듯 미술관은 작품이 사람보다 더 대접을 받는 곳이다. 전시장만을 찾은 관람객들은 미술관의 작품들이 어떻게 보관되고 다루어지는 지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기에 혹여 가벼이 여겼던 작품들이라면 이처럼 세심하고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는 수장고의 기능을 상기하며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 대해 주면 어떨까.

앞으로 국립현대미술관 혹은 국립중앙박물관 그리고 루브르미술관이나 바티칸미술관 등을 가게 되면 지하 깊숙한 어딘가에 작품을 보관하는 보물창고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는 것도 작품을 관람하는 재미를 더할 수 있을 듯 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