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경훈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질량분석연구부장 |
한 가지만 잘하기도 쉽지 않은데, 세상에 나와 성공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진다. 과학에서도 과거와 같이 한 분야만을 파고드는 연구만으로는 우수한 성과를 내기 어려워졌고, 다른 분야의 지식과 기술을 접목한 융합과학으로의 전환이 요구된다. 지난 2000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유전학 분야의 발전과 동시에 유전자 서열 측정 장치의 개발, 유전자 서열 정보 분석 알고리즘의 개발 등 세 분야가 함께 발전하여 이루어낸 성과였다. 만약 이 세 가지 중 어느 하나라도 부족했다면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완성은 요원한 일이 되었을 것이다.
최근 생명과학 분야에서는 융합과학 연구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대량의 생물시료를 보다 신속하게 분석하기 위한 분석장치와 분석법의 개발은 오믹스라는 새로운 연구 분야를 탄생시켰다. 또 지금까지 축적된 생물정보 데이터로부터 복잡한 생명 현상을 보다 정교하게 이해하고 예측하기 위한 정보기술의 발전은 시스템생물학 분야를 만들었다.
생명과학과 의학의 접목을 통해 분자수준에서의 유전자 및 단백질 정보로 질병을 진단하는 분자진단 시스템이 개발되고 있으며, 신약 개발에 컴퓨터의 활용은 신약 개발에 드는 비용과 기간을 대폭 단축시키는 성과를 거듭하고 있다. 이처럼 생명과학 연구가 발전을 계속함에 따라 융합과학의 중요성은 나날이 커지고 있으며, 이러한 융합과학은 연구의 내용이나 인력, 예산 면에서 점차 대형화되어가는 추세다.
이처럼 과거와 같이 혼자서 연구실에 틀어박혀 추진하는 연구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기는 거의 불가능해졌다. T자형이든, H자형이든, 심지어는 다방면에 전문적 지식이 풍부한 문어발형 인재든, 아무리 유능한 인재가 있다고 해도 혼자서 하는 연구로는 한계가 있다.
결국 융합연구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하나의 아이디어 아래 모여서 서로 지식과 기술을 나누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국내에서 융합연구라 불리는 많은 연구 프로젝트들은 한 명의 사업책임자에 의해 주도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다른 분야의 전문가에게 사업의 일부분을 맡기고 일정 기간이 지난 후 연구결과물을 받아가는 형태의 주종 관계식 협동연구가 대부분이었다.
진정한 융합과학은 이인삼각 경기, 삼인사각 경기다. 어느 한쪽이 빨리 뛴다고 해도 다른 한쪽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 결국은 넘어지고 실패한다. 세계적인 연구성과를 내기 위한 융합과학은 서로가 상대방 분야를 이해하고, 융합의 중요성을 공감해야 한다. 이러한 상태에서 지속적인 정보교류와 의견교환이 이루어져야만 창의적인 융합연구가 가능해지고, 성공적인 연구결과를 얻을 수 있다.
우리나라와 해외 과학선진국을 비교할 때에 개개인의 능력면에서는 우리가 뛰어나지만 공동연구, 협동연구에 있어서는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을 때가 적지 않다. 예로부터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었듯이, 아직도 우리는 가까운 사람을 칭찬하고 남의 성공을 인정하며 협력에 감사하는 분위기에 익숙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이제 과학의 발전은 여러 분야가 서로 연관되어 이어지고 있다. 과학의 발전에 있어서 사촌이 땅을 사서 함께 잘 살아야만 우리가 행복한 시대가 되었다. 융합과학의 중요성이 더욱 불거지는 시점에서 공동연구에 익숙하지 못한 국내 과학자들은 다시 한 번 자신의 연구방법을 되돌아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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