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외순 구봉초등 교장 |
도롱골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좁은 도로를 향해 걷다보면 소나무, 참나무, 가시돋힌 복분자나무, 자두나무 등등 갖가지 무리지은 나무의 군락을 스쳐 지나게 된다. 한 걸음을 디디고 지나갈 때마다 내 상념의 싹이 삐죽삐죽 솟아나온다. 어느 구석인가 잠가지지 않는 상념의 울타리, 그 안을 들여다보면 작은 텃밭 속에 이제 부풀어 오르는 꽃망울도 있고, 이제 갓 싹을 티우는 이름 모를 야생화도 있다.
봄에는 유독 많은 씨앗들이 날아들어서 내 마음의 창고에는 온갖 씨앗들로 가득 차곤 한다. 새롭게 만난 아이들, 학부모님들, 선생님들, 그리고 세상의 또 다른 사람들, 상념의 창고에는 보내는 사람과 새로 맞이하는 사람들의 형상이 씨앗이 되어 저장된다. 가득 찬 씨앗으로 밭을 일구고, 이 씨앗들을 정성스레 뿌리며 내 상념의 창고는 부자가 된다.
도롱골을 가기 위해서는 유독 마음을 수련하는 쉼터를 자주 지나게 된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날아갈 듯한 기와지붕에 고즈넉한 수도원은 누런 황토방에 투명한 유리창을 하고 있다. 창 너머로 머리를 조아리며 기도하는 이름모를 사람들의 기원은 무엇일까? 이제 왼쪽으로 구부러진 좁은 농로를 향해 길머리를 잡으니 이름 모를 산새들이 지저귀며 앞을 인도한다.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조그만 농가!
여름에는 붉은 칸나가 언덕을 온통 붉게 물들이고 가을에는 하얀 개미취와 개망초가 올망졸망 자그마한 농가를 둘러싸고 있었는데, 농가 주변은 산에서부터 흘러 스며든 맑은 물이 연못을 이루고 있다. 이름모를 붕어와 물고기떼들이 신기하게 계절을 알고 겨우내 살던 집에서 나와 물살을 가른다.
도롱골은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때론 사나운 전사가 되어 좁은 골망을 사납게 휘젓는가하면 따뜻한 봄날에는 새색시의 수줍음으로 몸을 사린다. 흐드러지게 핀 연분홍 벚꽃은 새색시의 수줍은 볼처럼 환하게 아름답다. 도롱골 끝자락은 산기슭에 이어져있다.
좁은 산길로 오르는 언덕은 한 사람이 간신히 지나갈 정도로 좁고 경사가 완만하다. 이 좁은 산길을 무척 사랑하는 나는 할 일없이 산길을 오르락 거린다. 향긋한 흙내음을 맡으면서 언덕을 오르면 겨우내 추위 속에서 오들오들 떨었을 나뭇가지가 이리저리 뒹굴고 있다. 나무 밑둥에서 살아 숨쉬는 연초록 생명의 새싹을 본다. ‘이제 도롱골에도 봄이 왔구나!’
울타리 저 아래의 텃밭에서 봄을 맞이하는 촌부의 손은 그래서 바쁘기만 하다.
봄바람이 분다. 도롱골의 모든 생명들이 소리를 낸다. 언덕을 올라 도롱골을 내려다 본다. 올망졸망 모여있는 농가는 모자이크처럼 아롱다롱 곱게 수놓아져있다. 자연의 깊은 숨소리가 도롱골을 들이마셨다 토해놓는다. 도롱골에 봄의 훈기가 ‘훅’하고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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