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작가 백희수. 표절 혐의로 한순간에 모든 걸 잃고 시골 외딴 별장으로 내려간다. 글은 써야겠는데 한 글자도 쓸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 딸은 ‘언니’라는 누군가와 대화하고 별장에서 벌어졌던 섬뜩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희수는 이 이야기를 소설로 써 재기에 성공하지만 다시 표절 논란에 휩싸인다.
엄정화가 “최고의 연기를 보여줬다”는 칭찬을 받고 있다. 영화 '베스트셀러'에서 보여준 연기 덕분이다. 그녀는 표절시비에 시달리는 작가 백희수 역을 맡아 예민한 작가, 모성애 깊은 엄마, 액션까지 폭넓은 연기를 소화해냈다.
'베스트셀러'는 최근의 한국 스릴러 영화가 선호하는 세련된 비주얼을 거부하고, 거친 톤으로 밀어붙인다. 이야기 전개는 더욱 거친데, 한 작가에 대한 드라마로 시작해 스릴러와 호러를 거쳐 액션으로 마무리 된다. 영화가 정신없이 달려갈 때 뒷심을 잃고 방황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베스트셀러'는 탄탄한 기승전결의 힘을 보여준다. 여기엔 배우의 힘이 절대적이다.
그 중심에 엄정화가 있다. 초점이 맞지 않는 눈동자, 부스스한 머리와 다크 서클이 선명한 눈. 엄정화는 창작욕에 불타지만 창작할 수 없는 히스테릭한 작가의 모습을 현실감 있게 그려낸다. 이 엄정화의 피폐한 느낌이 영화의 중심을 잡고 영화 전반을 아우른다. 특히 정신과 상담 장면에서 극도의 예민함을 표현하는 연기는 압권이다.
이쯤에서 영화는 느닷없이 반전을 꾀한다. 미스터리물로서는 드물게 영화 한 복판에 배치한 반전은 음산한 효과음 등 호러의 분위기에 맞물리면서 효과는 기대 이상이다. 통상적인 영화문법을 따른다면 반전으로 강펀치를 먹였으니 여기서 영화를 끝내야 맞다. 웬걸. 영화는 이제부터 본격적이다. 희수는 실제로 살인사건이 일어나지 않고서야 이런 엄청난 우연이 있을 리 없다고 확신하고 사건의 한복판에 뛰어든다.
엄정화는 광기 어린 표정으로 산속을 뛰어다니고, 물에 빠지는 등 악전고투를 펼친다. 이야기에 헌신하며 모든 걸 내던지는 엄정화는 하지원과 더불어 가장 과소평가 받는 배우 중 하나일 것이다. 남편 역의 류승룡과 조진웅, 최무성, 조희봉, 오정세 등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노련한 배우들과 이루는 섬뜩한 앙상블도 조율이 잘 돼있다.
왠지 수상한 마을, 숲 속 음침한 외딴 집, 초현실적인 현상, 그 걸 감지하는 아이, 유령처럼 출몰하는 광인, 감추어진 과거의 비극, 결국은 드러나는 비밀, 한바탕 벌어지는 혈투 등등 관객들은 어디서 봤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익숙한 코드들로 가득 차 있긴 하지만 감독은 이를 복합 장르의 향연 같은 연출과 짜임새 있는 구조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지금껏 실망스러웠던 대부분 신인감독들의 장르영화가 용두사미에 그쳤다면 '베스트셀러'는 오히려 뒤로 가면서 탄력을 받는다. 차기작을 기대해볼만한 신인감독의 이름이 하나 더 추가됐다. 류승룡은 이 영화를 “엄정화에 의한, 엄정화를 위한 영화”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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