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영진 중도일보 前 주필 |
당시 경북 영일만 근처에 살다 불미스런 일로 섬나라 일본으로 추방당한 그녀는 도래계와 원주민을 규합, 신라를 정벌했다는 내용이다. 그녀가 신라를 정벌함에 있어 주술로 일관한다. 해안에서 “군선이여 나와라!” 소리치면 낙엽이 우수수 날아와 배가되고 “군사도 나오라!” 호령하면 병사가 도열한 것으로 나와 있다.
이렇듯 만화 같은 이야기로 포장된 신라정벌설, 일본의 '가야지배설'은 서기 4~5세기에 왜국이 가야 땅에 군대를 파견, 정치기관인 '임나일본부'를 세웠다는 이야기다. 일인들은 줄곧 교과서에 실어 그렇게 가르쳐왔다. 하지만 세기의 석학 에가미 나미오(江上波夫)의 연구결과는 세인의 눈을 끌었다. 그는 일본 건국신화가 가야국 것을 그대로 닮았다고 설파했다. 기원 42년 3월초 하늘에서 성체가 가야국 '구지봉'에 내려와 개국선언을 한다. 이에 주민들은 임금을 맞을 채비를 하는데 하늘에서 한줄기 빛과 함께 홍포(紅布)에 싸인 물체가 나타났다.
그 홍포 속에 싸인 물체는 6개의 황금알이었다. 이 알에서 나온 왕자들은 쑥쑥 자라 그 중 김수로왕은 김해평야에 '대(大)가락국'을 세웠고 나머지 5명은 낙동강 유역에 다섯 개 가락국을 건설했다. 그러면 왜국은 왜 가야국신화를 모방하고 있는가?
첫째, 가야와 왜국의 건국신은 '천손강림'이라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여기서 가야의 성체는 황금알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둘째, 하늘에서 내려와 산봉우리에서 마을사람들과 대화하는 내용도 매우 흡사하다. 가야의 성체는 “이곳에 사람이 없느냐?”고 물었고 일본개국신은 이곳에 나라가 있느냐? 없느냐를 묻고 있다.
셋째, 가야의 시조는 홍포에 싸여 강림하는데 일본시조는 이불을 쓰고 내려왔고, 왜국 시조는 다카지호(高千)에 강림하며 '여기는 가야국을 향하고 있어 좋은 터전이다'라고 했다. 이는 시조가 '가야인'이라는 뜻이다.
에가미 교수의 이와 같은 연구발표는 눈여겨 볼 대목인데 그는 또 '기마민족도래설'로 유명한 석학이다. 필자는 지난 1970년대부터 일본의 작가, 학자들과 만나 토론도 하고 세미나를 가진 일이 있다. 그때마다 '신라정벌'의 허구성과 '임나일본부설'의 부당성을 지적해왔다. 개중에는 “글쎄요?”하는 학자가 있는가 하면 니시다니(西谷正) 규슈대 교수는 “일본에는 아직도 설익은 학자군이 있어요”라고 했다. 그의 연구실(30년전)에는 가야문물(마구, 화살촉) 같은 걸 소장하고 있었다. '일본의 가야지배설' 폐기는 한·일 역사공동위의 연구 성과라기보다는 당연한 허구에 다름 아니다.
일본의 '가야지배설' 폐기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한·일교류사를 펼쳐 볼 때 두 나라가 화평을 누릴 때는 예외 없이 한민족의 진운기였고 일본이 융성하면 예외 없이 침략으로 나왔다. 한·일간의 역사정리에 있어 타고 넘어야할 과제는 산적해 있다.
일제강점기 징병, 징용과 정신대 문제, 을사조약의 성격 정리, 조선통신사의 진면목도 해부 등도 정리해야 할 사안이다. 일인들은 조선통신사가 마치 종주국에 조공을 바치는 행사로 해석하는 이가 없지 않다. 우리는 때문에 역사공부를 더욱 강화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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