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기지시의 에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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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밖]기지시의 에로스

  • 승인 2010-04-14 11:01
  • 신문게재 2010-04-15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네 번째 민속문화의 해, 2010년 충남 민속문화의 해 선포식에서 덥석 생각을 잡아챈 것은 뜻밖에도 저 상징 표장[엠블럼]이다. 암줄과 수줄을 잇는 비녀장을 꽂은 일러스트는 약간 되바라지게 아리땁다. 야하나 희화화로 흐르지 않았다. 시선이 토속적이고 정겹다. 올 1년 '민속자원 발굴 및 활성화'의 밝은 사업 전도를 보는 듯.


중요무형문화재 제75호인 기지시 줄다리기의 암·수줄은 그냥 줄이 아니다. 탈춤과 기우제, 자연물인 성석(性石), 종교 차원인 한국 성 문화의 계보를 당당히 잇는다. 생활이고 신앙인 민속의 또하나 속살은 성교육이다. '가수(嫁樹)'라 부른 '나무시집보내기'를 보자. 과일나무 가지 틈에 돌을 끼워 박는, 얼마나 짜릿한 '19금 놀이'던가.

우리 선인들은 이렇듯 웬만한 풍진 세상사는 음양의 이치로 풀려 했다. 이 시대라면 여신 달랜답시고 상징적인 성행위를 상납하는 일은 어림도 없다. 뭉툭한 짚방망이로 지나가는 부녀자 엉덩이를 콕콕 찌르다간 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 집집마다 돌며 '호호방아야' 지신굿을 걸쭉하게 벌여 흙방아 찧던 자랑스러운 선조들께 박수!

언감생심이지, 지금 기준으로는 정말 경칠 놀이들이다. 이순신 제독이 의병술(疑兵術)로도 쓴 강강술래 역시 놀이로 구조화된 성을 은근하게 슬쩍 보여준다. 여성들의 군무는 달의 정기를 받는 의식이고, 휘영청 달 밝은 밤에 그녀들이 그리는 원(圓)은 다름 아닌 여성기인 것이다.

모의 성행위 신앙의 성격은 500년 전통의 기지시 줄다리기에도 엿보인다. 엠블럼이 된 암·수줄을 다시 본다. 풍년, 풍어를 기원하지만 볼수록 성 샤머니즘 냄새가 솔솔 풍겨 나온다. 고장에 따라 암줄과 수줄 사이에 꽂는 나무빗장을 '고딩'이라 한다. 고딩을 꽂을 때 사람들은 아주 민망한 소리를 낸다.

이 교성 같은 환성은 남녀 열락의 효과음이다. 줄다리기는 에로스를 풍속문화로 승화시킨다. 줄을 암수로 나누는 것부터 수상쩍다. 수줄의 목줄이 암줄의 몸줄 속에 들락날락하는 건 제대로 성 상징이다. 기우 줄다리기에서 암줄과 수줄은 두 마리 용인데, 용을 교미시켜 강우(降雨)를 얻고자 했다. 이때도 여성과 땅은 동일시된다.

기지시 줄다리기는 약간의 보충설명을 요한다. 특별나게 시장의 '시(市)'가 땅이름에 붙은 '기지시(機池市)'는 내포지역에서 서울 가는 길목에 한 달 열두 번씩 뻔질나게 장이 서던 곳. 그런 기지시의 액운을 막는 의미에 이러저러한 속신이 가미된다. 임신(姙娠)의 '임(姙)'은 여자[女]에게 맡긴다[任]라던가. 득남을 바라는 부녀자들은(총각들도) 음양을 맞비빈 비녀장 꽂은 부분을 다투어 잘라 가고….

성, 다산 관련 주술이 아니더라도 줄다리기는 한·중·일과 동남아, 호주 일대의 농경지대에 널리 분포한다. 대전MBC에서 중계한 아시아줄넘기대회를 보니 정형화된 스포츠의 옷을 입고 있다. 민속으로 지키기와 '스포츠 줄다리기'로서 경쟁력 갖추기는 별개 사안인가 보다. 기지시 줄다리에서 훔쳐본 성은 서로 육정을 나눠 즐기는 남녀상열지사만이 아닌, 안녕과 풍요를 희구하는 공동체적 신앙이었다.

그리고 '줄'은 생명이기도 했다. 호랑이를 피해 하늘로 타고 올라 해·달이 된 오누이 이야기의 동아줄은 하늘과 땅, 생사의 끈이었다. 신과 인간을 잇는 통로가 탯줄이다. 희랍에서 올림피아제를 지내 화합을 이루었듯, 민속문화의 해 휘장에 살아난 암·수줄. 바라옵건대 꽉 막힌 이 나라에 한 가닥 화합과 소통의 '줄'이 되어 주십사.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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