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미술관 전시는 ‘작품’과 감상자로서의 ‘관객’간의 만남이었다면, 최근에는 작품의 창조자인 ‘작가’와의 만남이나 아트 토크(Artist Talk) 또는 작가와의 대화라는 제목으로 시행되곤 한다. 대전시립미술관도 2004년 <그 투명성의 신화>전을 시작으로 여러 전시에서 꾸준히 관람객과 작가와의 만남의 자리를 마련해왔다. (현재 열리고 있는 <웃음이 난다>전에서도 작가와의 대화가 예정되어 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많은 미술관 전시에서 작가와의 대화는 거의 보편화된 프로그램이다.
처음에는 작가와의 대화라는 말에 관람객들도 낯설어했지만, 사실 참여 작가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작품으로 보면 되지 무슨 대화냐?”라며 역정을 내는 분도 계셨고 “워낙 말 주변이 없어서… 힘들어요.”라며 당신은 살짝 빼달라고 조르는 분도 계셨다.
미술작품을 둘러싼 배경을 제외한 채, 오직 결과물인 작품을 중심으로 분석하는 형식주의 비평의 관점에서 본다면, 작가와의 대화는 무의미할 뿐 아니라 위험할 수도 있다. 자칫 작품에 존재하지 않는 내용을 관객에게 전달하여 작품 감상을 훼손할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작가가 표현하고자 의도하였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그림 속에 담아내는 데 실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작가의 말=작품에 나타난 것’으로 믿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작품을 독립된 개체인 동시에 여러 가지 사회적, 역사적 맥락 속에 놓인 대상으로 바라볼 경우 작가와의 대화는 많은 새로운 점을 밝혀주는 길잡이가 되어준다. 독특한 작품제작과정이나, 특정한 색채를 선호하게 된 계기 등은 작가로부터 듣지 않으면 좀처럼 풀기 힘든 수수께끼다.
낯설고 어색했던 첫 출발 이래 꽤 오랜 동안 미술관에서 작가와의 대화를 마련해왔지만 대화하고 토론하는 문화가 익숙치 않은 탓인지 자리에 앉지 못하고 주위를 서성거리는 관객들을 보곤 한다. 자유롭게 질문을 해도 상관없다 하여도, 대부분 “제가 잘 몰라서 하는 질문인데요.. ”, “미술에 완전 문외한이라서요..” 등 잔뜩 긴장하고 움츠려들곤 한다. 질문을 장려하지 않는 학창시절 탓에 ‘이런 질문을 해도 될까?’라는 자기검열이 아주 습관화된 탓인가 싶어 씁쓸해지기도 한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자꾸 궁금한 것이 생기고, 기회가 되는 대로 이것 저것 물어보게 된다. 그림도 역시 마찬가지다. 좋아하는 그림이 생겼을 때 그저 보고 즐기는 것으로 충분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더 많이, 더 깊이 알고 싶은 욕구가 생기곤 한다.
그러한 궁금증을 그저 풀지 못할 것으로 내버려두지 않아도 된다고 현대의 미술관들을 말한다. 작가와의 대화는 ‘그림과 대화’인 동시에, 그림과의 대화로 풀지 못한 의문들에 답을 얻을 수 있도록 이끌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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