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당시 현장에서 수거했으나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던 증거물이 과학수사 발전 덕분에 용의자 신원을 특정할 수 있는 결정적 단서가 됐기 때문이다.
지난 2001년 10월 26일 경찰은 전날 살해된 대학교수 홍 모(당시 66세)씨 부부 시신을 자택 창고에서 발견했다.
경찰은 현장에서 평소 부부가 즐겨 사용하던 장판에서 지문 11점과 모발 다수를 발견했다.
이 가운데에는 형태가 일그러지고 크기가 작은 일명 ‘쪽 지문’도 포함돼 있었다.
경찰은 지문 감식을 통해 대다수 지문의 신원을 확인했지만 쪽지문에 대해서는 누구의 것인지 밝혀내지 못했다.
2000년대 초 경찰이 보유한 지문감식기계가 쪽 지문을 판독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현장 감식을 잘했다고 할지라도 그 당시 경찰 능력은 거기까지였다.
이로부터 9년이 흐른 2010년 2월, 경찰청은 렌즈와 판독 시스템 기능을 업그레이드 한 지문감식기를 도입했다.
경찰은 전국 미제 사건 증거물을 본청에서 다시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01년 예산 사건 당시 쪽 지문을 남긴 당사자가 충남에 사는 모 종교 신도 이 모(38)씨라는 것을 알아냈다.
또 현장에서 발견된 모발 감식을 통해 이씨의 DNA와 일치하는 점을 확인, 이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확신하고 검거했다.
이씨 검거 후 경찰은 범행 추궁 끝에 함께 범행에 가담한 정 모(50)씨와 심 모(48)씨도 차례로 붙잡는 데 성공했다.
결국 9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면서 발전한 경찰의 과학수사 힘 앞에 베일에 가려져 있던 용의자가 덜미를 잡힌 셈이다.
쪽지문과 모발 이외에 피해자 의류에 묻어 있던 혈흔과 통화기록도 용의자 신원을 특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최철균 충남청 과학수사계장은 “2008년 이후 경찰청이 과학수사 장비를 업그레이드 하면서 전국의 미제사건 파일을 다시 분석했고 이 과정에서 대학교수 부부 살해범의 신원이 드러난 것”이라며 “자칫 영원히 미제로 남을 수 있었던 사건이 사건 현장에서 면밀히 증거물을 수집한 경찰의 노력과 과학수사 발전으로 해결됐다”고 설명했다. /강제일 기자 kangje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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