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문보 한서대 교수 |
요즘에도 식당을 가면 우리 아이들이 했던 행동들을 보게 되는데 남을 배려하지 않는 사소한 행동들이 남에게 많은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 것이다. 인간세상은 배려에서 출발한다. 예의범절이나 법질서 제도 같은 모든 것이 서로를 위한 배려에서 나온 것이다. 예수, 석가모니, 공자, 소크라테스 같은 성인들이 제각각 다른 표현으로 인간의 도리를 강조했지만, 그것을 꿰뚫는 공통된 원칙은 바로 배려였다.
직업은 배려하기 위한 도구이다. 정치인과 행정가는 법과 제도를 통해 국민을 배려하고, 회사는 고객들에게 만족이라는 배려를 전한다. 종교인은 사람들의 마음에 평화를 주는 배려를 하고, 발명가는 사람들의 꿈을 실현시켜주기 위해 신기술을 개발한다. 배려 덕분에 인류의 역사가 발전해온 것이다.
세상은 배려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짐 든 사람을 위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주는 아이, 초보운전자에게 양보를 해주는 사람들, 홀로 사는 노인에게 도움을 주는 자원봉사자들. 그런 수많은 사소한 배려들이 모여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 것이다.
우리가 서로 다른 위치에서 일하고 있지만 결국 남는 것은 사람이다. 사람관계만큼 소중한 것이 없다. 남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남을 배려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자기의 그릇을 비울 필요가 있다. 진심을 담기 위한 그릇이 비워있을 때만이 소통이 원활해지고 생각을 공유할 수 있다.
배려를 통하여 우리의 인생도 바뀔 수 있다. 평소에는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던 사소한 것들이 때로는 삶의 방향을 좌우한 중대 변수로 등장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작은 일에 신경 쓰지 않다가 나중에 그 결과가 나타나고서야 후회를 하기 때문이다. 통찰력을 갖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남을 배려해야 한다. 배려는 만기가 정해지지 않은 저축과도 같은 것으로 한푼 두푼 모으다 보면 언젠가는 큰 뭉치로 되돌아오는 것이며, 사람은 능력이 아니라 배려로 자신을 지키고, 사회는 경쟁이 아니라 배려로 유지되기 때문에 배려는 선택이 아니라 공존의 법칙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된다. 하나는 스스로 대가를 치르고 나서, 세상이 그 희생에 대한 대가를 돌려줄 때 즐기는 쪽이다. 또 다른 하나는 세상이 대가를 원할 때 그것을 치르기를 미루고, 생각 없이 눈앞에 있는 즐거움을 추구하면서 살다가 나중에는 어쩔 수 없이 그것에 대한 대가를 이자까지 포함해서 한꺼번에 치르는 부류들이다. 우리는 이런 부류를 사스퍼거 유형이라고 부른다. 사스퍼거는 자신에게 한없이 관대하고 남들에게는 무자비한 자로 이기적인 범주를 넘어 남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없어 결국 자신을 망치는 사람을 지칭한다. 사스퍼거는 남이 어떤 어려움과 고통을 겪든 자신이 알 바 아니며, 무모할 정도로 일방적인 이익만을 추구하고, 남의 약점을 교묘히 파고들어 그 속에서 자신의 기회를 찾아내는 악랄한 인간이다.
우리는 사스퍼거 유형의 인간이 되지 않고 인생의 행복과 즐거움 및 성공의 조건을 모두 갖춘 인간이 되기 위해서, 우리가 사는 세상을 즐겁고 신나는 곳으로 만들기 위하여, 또한 우리가 생활하는 삶의 터전을 축복이 충만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 자신과 상대방과 우리를 위한 배려가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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