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희 대전둔천초 교장 |
그들은 어느 화창한 날에 축제처럼 한꺼번에 피어날 예정인 듯 모두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목련은 큰길 쪽 보다 아파트 쪽의 개화가 조금 더 이른 것 같습니다. 봄인 줄 알고 피었다가 혹시 겨울의 복병이라도 만나면 미련 없이 고개를 꺾고 마는 짧은 생명인 줄 알고 있기에 꽃보다 봉오리가 더 예쁘다고, 그러니까 너무 성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토닥여 주었습니다.
길을 가다가 담장 너머로 드리워진 백목련을 보면, 그 담장 안에 가득할 것 같은 크림색 행복이 부러워서 손바닥만 한 우리 집 화단에도 목련 한그루를 심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집 목련은 꽃이 피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그 자리가 그늘진 곳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지성으로 물을 주고 거름이 될 만한 것들을 덮어주었더니, 어느 해인가 우리 집에도 백목련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송이도 작고 그리 화사하지는 않았지만, 솜털이 뽀송뽀송한 껍질을 뚫고 나온 뾰족한 봉오리가 어찌나 대견하던지 키 작은 목련을 붙잡고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납니다.
교정을 거닐다가 문득 목을 꺾고 교실을 올려다봅니다. 엄마 닭을 따르는 병아리 같은 재잘거림이 음악처럼 즐겁게 들려옵니다. 그러나 그 속에도 우리 집 목련 같은 늦깎이가 있을지 모릅니다. 처음부터 그늘에 태어났거나, 무언가의 걸림돌이 건강한 성장을 방해하는 아이들에게 우리 선생님의 따스한 눈길이 자주 머물렀으면 좋겠습니다. '소외되지 않고 함께 하는 것!' 그것이 그들의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토요일 밤,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귀를 기울이면'이라는 일본의 애니메이션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미 지면으로 만난 적이 있기에 그 작품이 강조하는 '원석'에 대하여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원석은 돌과 돌 사이에 있는 작은 돌로 보석 같은 광채를 띠고 있었습니다.
그 그림이 형상화 한 것처럼 사람들도 저마다 가슴속에 원석을 지니고 있는데, 그것은 각자가 가진 고유의 능력이나 소질, 혹은 개성으로 대입될 수 있답니다. 그러나 원석은 보통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경우가 많고, 또한 서두른다고 해서 찾아지는 것도 아니랍니다. 항상 자기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서 열정을 다하여 연마할 때, 원석(原石)은 아름다운 보석(寶石)으로 빛을 발하게 된답니다.
이 작품에서 또 다시 긍정하게 되는 것은 좋은 '만남'입니다. 돌과 돌이 만나 원석을 만드는 것처럼 사람과 사람이 만나 좋은 인연으로 거듭난다면, 개인이 가진 원석도 한층 더 질 좋은 보석으로 승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설리번을 만난 헬렌 켈러처럼, 히딩크를 만난 박지성처럼, 브라이언 오서를 만난 김연아처럼.
'평가'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는 현장에서, 우리 아이들과 선생님에게도 좋은 만남이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내 아이의 더딤은 내 탓이라고 선생님들이 손바닥을 내밀었고, 나의 성장이 선생님의 평가로 이어지는 만큼, 이제 그 결과는 아이와 선생님의 만남의 질로 결정될 것입니다. 지금 교정에는 잎눈 꽃눈 틔우는 소리, 아이들의 걸음마 소리, 선생님의 응원소리가 어우러지고 있습니다. 동그란 운동장에 금싸라기 같은 햇살 한줌이 살포시 내려앉았습니다. 우리 늦깎이들의 원석도 언젠가는 저렇게 보석처럼 반짝이리라 믿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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