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서구 한국천문연구원 대국민사업실장 |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근무 중이었던 조경철 박사가 귀국 후 둘러본 대한민국의 과학계는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할지 모를 정도로 연구환경이 열악하였다고 한다. 조경철 박사께서 전하신 말씀에 의하면, 경제부흥이 최대 과제였던 그 당시 대부분의 일반 국민에게 과학은 '잘사는 나라에서나 하는 사치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이 만연했다고 한다. 아무리 뛰어난 과학자라고 해도 국민들의 기반이 전혀 없는 이러한 여건에서 연구를 한다는 것은 개인의 연구일 뿐 국가 차원의 기여를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고민 끝에 조경철 박사가 내린 결론은 과학 대중화의 길이었다.
로켓이나 인공위성과 관련된 소식을 접할 때마다 조경철 박사가 떠오르는 것은 170권이 넘는 고인의 방대한 저술의 주제가 로켓이나 외계생명체에 관한 때문만은 아니다. 고인은 과학자로서 연구 활동도 뛰어나서 일생동안 5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천문학 중에서도 식변광성이라는 분야에서 많은 연구 활동을 하신 조경철 박사는 연구 분야의 특징에 따라 궤도계산 분야에 많은 기여를 하셨다. 이러한 연구는 인공위성이나 로켓의 발사와도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분야다.
조경철 박사는 1960년대 후반에 이미 인공위성의 궤도계산이나 달 탐사선의 비행체 구조 등뿐만 아니라 태양에너지의 활용에 관한 논문을 발표할 정도로 학자로서 미래예측이 대단하셨던 분이다. 최근까지도 일부에서는 고인의 행적이 학자로서의 품위를 저버리는 것이라며 폄하했으나 이는 그 뜻을 모른 채 평가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학자로서의 오해와 개인적인 희생 덕분인지 조경철 박사가 평생 일궈온 과학의 대중화는 이제 조금씩 그 열매를 얻는 것처럼 보인다.
세계 천문의 해를 전후로 두 차례 조사된 전 국민의 천문학에 대한 인식도 조사에서 국민의 약 80%가 천문학이 중요한 학문이라고 인식하고 있으며, 60% 이상의 국민이 천문대를 방문할 의사가 있다고 응답했다. 천문학은 모든 과학 분야 중에서 일반인의 관심을 가장 많이 받는 분야이면서 동시에 일반 국민의 관심을 모든 과학 분야로 넓혀줄 수 있는 분야다. 따라서 이와 같은 일반 국민들의 인식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적어도 과학은 '잘사는 나라의 사치스러운 것' 이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40년의 세월동안 조경철 박사가 연구 대신 활약하신 과학 대중화의 길이 한 세대만큼의 열매를 얻게 된 것이다.
최근 천문학 대중화를 위한 학회에 참석해 다른 나라의 과학 대중화 활동을 우리의 것과 비교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 중 흥미로운 것은 미국과 유럽 등 서양의 과학대중화는 그 프로그램이 비교적 단순하지만 꾸준히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일반 국민들의 인식을 서서히 변화시킨다는 점이다. 2~3년 동안 진행하는 프로그램으로는 일반인들의 인식을 바꿀 수 없다는 점을 미리 인식하고 있다는 것도 우리와 다른 점이었다. 어느 연구소 소장이 10년 넘게 직접 강연하는 대중강연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몇 년 정도의 활동으로 의식의 변화를 기대하는 것에 익숙하지만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고인이 되어 이제 그 빈자리가 느껴질 고 조경철 박사가 40년 넘게 해 오신 일을 이제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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