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요한 목원대 총장 |
그런데 독장난명(獨掌難鳴)이라고도 쓰이는 이 글귀의 유래를 찾아보면 부정보다는 긍정의 의미를 지닌 글귀임을 알 수 있다. 한비자(韓非子)의 공명편(功名編)에 나오는 이 글귀는 두 사람이 협력해야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좋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군주가 큰 뜻을 이루려 하여도 신하가 힘을 합하지 않으면 그 뜻을 이룰 수 없다.
그러나 군주가 신하를 부리기보다는 신하의 능력을 인정하게 되면, 신하는 군주에게 충성을 다하고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게 되어, 결국에는 둘 모두가 품었던 국민의 안락한 삶이라는 공공선(公共善)이란 큰 뜻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지위와 역할은 달라도 두 사람이 뜻과 힘을 합칠 때 둘 모두 더 나아가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큰 뜻을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런 의미를 지닌 고장난명이란 네 글자를 우리는 왜 자꾸만 싸움이라는 부정적 상황에만 적용하여 사용하고 있을까? 필자는 '콩 한쪽도 나눠먹던 공동체 사회'가 '너를 이겨야 내가 살아남는 경쟁사회'로 세상이 바뀌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약육강식의 원리가 지배하는 정글과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협력을 통한 공생(共生) 보다는 경쟁에서의 승리에 더 높은 가치를 두게 된다.
심리학자 프로이트가 인간은 자신의 본능을 충족시키고 행복해지기 위해 세상과 싸울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말한 것처럼, 경쟁사회 속의 우리는 협력과 조화보다는 경쟁과 다툼을 먼저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협력이라는 조화로운 관계보다는 싸움이라는 경쟁적 관계에 더 익숙한 우리들이 고장난명의 좋지 않은 뜻을 자주 사용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로 보이기도 한다.
'사람 인(人)' 자에서 보듯이, 우리는 원래 서로 기대어 서지 않으면 안 되는 매우 불완전한 존재다. 그런데 우리는 본연지성(本然之性)을 망각한 채 서로 다른 방향으로 뛰고, 같은 방향으로 뛸 때도 오직 이기려고만 한다. 남보다 더 많이 가지려, 더 높은 자리에 오르려고 애를 쓰고 또 애를 쓴다. 심지어 남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고, 남을 짓누르면서까지 윗자리에 오르려 한다.
그 자리가 갖는 의미와 책무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그 자리에만 오르려 갖은 수단을 다 쓴다. 그 자리에 오른 후에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의 원리를 따르기까지 한다. 이렇듯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혼자 달리면, 달리는 동안 얼마나 외로울 것이며, 달려간다 한들 큰 뜻을 얼마나 이룰 것인가? 아마 달리다 지쳐 포기하기거나, 달리는 길 위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 십상이며, 결국에는 당초의 목표도 잊어 버린채 멍하니 하늘만 쳐다볼 것이다.
그런데 고장난명이란 글귀는 서로 힘을 합해야 한다는 협력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이 글귀에서는 협력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큰 뜻 즉, 협력의 목표를 드러내지는 않지만 은밀하게 강조하고 있다. 이 글귀에는 협력하여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자신을 위한 사익(私益)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공익(公益)이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그러기에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큰 뜻을 세우고, 내가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이길 수 있도록 어깨동무하고 걸으라고 옛 선인들은 이 글귀를 통하여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다. 나와 내가 품은 뜻만을 생각하는 사람보다 우리와 우리 모두를 위한 뜻을 세우고 힘을 합치자고 외치는 사람이 많았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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