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하는 사극을 보는데, 질리도록 듣고 자란 호칭이 튀어나온다. 다름 아닌 '삼촌'인데, 제주도에서 남녀 구분 없이 부르는 말이라는 자막이 곁들여졌다. '삼촌'은 젊은 남자에 대한 정겨운 부름말일 뿐 아니라, 여자에 대해서까지 이렇게 불러, '영미 삼촌', '미란 삼촌'도 있다.
사내들의 '언니' 호칭을 실로 오래간만에 들은 것도 드라마에서다. 여행 중 비좁은 공간에서 샌드위치를 먹다 보니 오른편 바짝 앞은 점원 아가씨 얼굴이, 정면은 지나치게 큰 TV가 점하고 있었다. TV를 봐야 했다. 남자끼리 서로 '언니'라며 옥신각신하는 장면이 흘러갔다. 이미 막을 내렸지만 내가 느지감치 그 드라마를 본 동기는 배짱과 포용력, 그리고 남자 언니들의 '낯설게 하기' 덫에 걸려든 결과라 해도 좋을 것이다. 남자 사이에 '언니'가 부활한다면 거친 마음성(性)에 부드러운 윤활유가 되고 차별이 줄어들며, 또 재미있어질 것 같다.
말의 관계망을 따지면 자매(여자+여자)나 오누이(남자+여자)는 아우, 자매, 동생, 누나를 다 아우르는 '형제'에 종속적이다. 파생의 용례도 자매기관, 자매도시, 자매결연, 자매학교의 자매와 형제지국, 형제애, 형제궁의 형제는 어딘지 달라 뵌다. 국가, 정의, 하늘의 관념이 섞인 형제에서 크기와 통이 더 느껴진다 할까.
그러면 왜 자매결연은 있고 형제결연은 없냐고 반문할 차례다. 한자문화권에서 사물에 관련되면 '자매', 사람과 관련되면 '형제'라는 풀이는 정통하지 않고, 친한 관계의 것들에 'sister'를 붙이고, 자매도시를 'sister city'라 하는 영어의 영향이라 봐야 타당하다. 자매의 관계 맺기란 어쨌거나 예사 인연으로는 안 된다.
비운의 해군 초계함 천안함은 천안시와 자매결연한 사이다. 전례에 따라 붙인 이름이긴 해도 천안시와 천안함이 지난 20년 간 나눈 언니 동생의 교분자별(交分自別)함을 생각하니 비통함이 더한다. 천안함과 같은 계통, 같은 급으로 군산함, 경주함, 제천함, 진주함, 여수함, 순천함, 공주함, 원주함, 대천함 등이 있다. 천안함을 깊이 애도하며 이들 자매함들의 무운 장구를 빌어본다.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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