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적한 스승의 유지 아닌 유지를 찾아 지키는 덕진 스님의 행함은 사소함 하나라도 그릇되지 않으려는 마음이 묻어난다. 우리는 누군가를 향해 단한번의 유서 같은 것을 써보자. 혹은 없더라도 조금씩 근접한 삶을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美미의 궁극적 모습도 마찬가지다. 극도의 이기심이 광기로 까지 발전하고 그것이 비로소 놓여 날 때 즈음을 기해 조금씩 색채가 엷은 웃음빛을 갖지 않던가. 소담스런 서민들의 웃음, 백제의 마애삼존불도 그렇고 운주사의 부처 또한 그러한 웃음을 가졌다.
정책을 입안 하고 수행하는 기관의 모습도 점점이 찾아보면 그러한 노력들이 비추어 보인다. 밤늦도록 공부하고 토론하고 서로가 편협하지 않으려고 공부하는 정책팀도 그렇고 문화예술팀도 그렇다. 간혹 화음이 엇박자를 내는 것은 항시 더 잘해보자고 좀 더 많은 것들을 나누어 보자는 마음이 한발 앞서거니 하다가 자신의 발을 밟는 우를 범할 때도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 대해서는 응원 박수 또한 보낼 필요가 있다.
들여다보는 물그림자 속에는 보이지 않는 흐름의 물 주름 자국이 있지 않던가 . 월드컵을 돌이켜 보면 끝없이 대화하라고 하던 히딩크의 주문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잘할 때는 아직 배고프다고 소리치는 그의 용병술이 빛나 보일 때가 있는 것처럼 각 장르 각 단체가 서로가 이해득실에 빠져 있을 때 대화를 주문하고 서로가 긴장이 풀어질 때 문화의 화두가 살아나 이 땅에 무소유의 眞言진언 같은 문화의 불길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누구든 시시비비가 있을 때에는 휘파람 소리에 그라운드에서 싸움을 멈추는 것은 페어플레이 정신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어른은 나이어린 자들의 교훈이 되고 앞서는 자는 뒷사람의 족적이 되리니 그 발자국을 항상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기억해야 할 것이다.
김홍도의 화첩 하나를 본떠 그린 김계원의 와유첩 하나가 옥션을 강타 할 때도 그러한 저력과 갈급한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겠는가. 언젠가 지역의 명품 미술관을 통해 모든 시민들이 문화를 사랑하고 그 공간에 새로운 공감대가 형성되어 문화가 불길처럼 성숙되고 시민들의 일상생활이 문화적으로 행복해 하는 자신이 태어난 이곳에 명품 도시를 꿈꾸던 건축가 한사람이 생각이 난다. 그가 끊임없이 생각하는 미적 탐구는 아름답다 못해 안타까울 정도였다.
문화가 성숙하려면 예술에 대한 돈키호테가 있어야 한다. 그의 가슴에는 그러한 기질이 있었다. 그리고 애타게 사랑하는 충청에 대한 사랑을 볼 때면 갈라진 틈도 메우려고 하는 노력하는 자들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상처는 곪아야 터지고 새살이 돋는다. 예술가들이여 미를 놓고 이기적으로 싸워라. 이득을 놓고서는 누가 가질 것인가 보다는 누가 더 객관적 노력을 통해 서로를 부둥켜안고 나눌 것인가를 생각하면 가슴이 뛰는 소리가 좀 더 선명해 지는 것이라고 믿는다. 좌절할 때는 억울해서 눈물이 난다. 당연하다.
문화는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해시키는 것이고 나누는 것이라는 전제를 이해한다면 구상이든 비구상이든 하나의 이해 객관적 진실이 전이되는 것이다. 서로에 대한 모호함을 버리자. 달란트 비유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잘하였도다.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직분의 복은 그렇게 정지되고 경직되는 것이 아닌 서로의 부족함을 능동적으로 메워 주는 것이라는 것이다.
문화정책은 위임받은 많고 적음에 있지 않고 청빈한 생각과 비움을 그리고 구체성을 가지고 다음세대를 준비하는 것이다. 조금 더 그림자 진 문화의 소외계층을 찾아 행복을 나누는 일이다. 문화적 포만감은 현실의 괴로움을 넘기는 가장 큰 자양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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