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창근 ETRI 기술전략연구본부장 |
이러한 연구개발체제의 전환은 그동안 시장의 수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일각의 비판과 연구개발의 비효율성을 개선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모색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학문적 견지에서는 수요와 공급의 구조적 변화 관점에서 파악할 수 있다. 즉, 과거 공급이 수요를 만족시키지 못하던 시기에는 대량생산을 통해 '공급은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는 세이의 법칙이 유효했다.
그러나, 소비자의 욕구가 보다 다양해지고 공급이 수요를 능가하는 시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시장니즈의 파악, 시장니즈의 진화를 강조하는 새로운 학문적 사조가 등장하고 있다. 기술혁신론의 측면에서도 초기에는 모방을 통한 문제해결형 R&D를 추구하여 왔으나 점차 혁신을 통한 문제해결형 R&D를 거쳐 혁신을 통한 문제정의형 R&D 체제로의 진화가 모색되고 있다. 또한 경영학 특히 마케팅연구들의 최근 핵심이슈는 시장지향성, 고객지향성 등 개인 및 사회의 니즈를 중시하고 더 나아가 이러한 니즈가 R&D 활동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논리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R&D체제의 전환도 모색되고 있다.
요약컨대 경제학적, 기술혁신론적, 마케팅연구 등의 측면에서 볼 때, 향후의 R&D는 개인이든 사회든 이들이 원하는 니즈와 이러한 니즈의 진화과정이 결정적인 작용을 한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최근 이러한 니즈를 잘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스마트폰을 들 수 있다.
스마트폰의 대표격인 아이폰을 출시한 애플의 경우 앱스토어를 통해 고객들이 정보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놀이터를 마련해 줌으로써 웹의 진화와 함께 화두로 떠올랐던 '개방과 협력, 참여와 공유'를 아이폰을 통해 직접 실천했고, 이는 고객들의 니즈와 합치됨으로써 대성공을 거둔 것이다.
반면, 세계 이동전화 제조사의 강자라고 할 수 있는 우리나라 제조업체들은 여전히 '경박단소(輕薄短小)'와 기능성 위주의 제품개발에 주력함으로써 하드웨어 중심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진화되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파악하는데 한계를 보임으로써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향후 니즈의 진화가 더욱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R&D체제의 전환도 불가피한 일이라고 사료된다. 니즈는 고객을 통해 발현되고 이를 충족시키는 제품이나 서비스는 기술을 통해 구현되므로, 양자의 조화로운 결합을 어떻게 유인하느냐가 R&D의 성공가능성을 제고하는 첩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니즈의 파악과 구현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지혜를 모으는 과정이 필요하다.
최근 R&D의 주요 흐름으로 부각된 개방형 혁신이 바로 이러한 과정을 강화하기 위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도 니즈의 진화방향의 탐색, 산업생태계 분석 등의 다양한 연구를 통해 향후 우리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개방형 R&D를 추진하는 체제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즉 기술적 아이디어 중심의 R&D기획에서 시장니즈를 중시하는 R&D기획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처럼, 시장니즈의 파악이 성공적인 R&D의 핵심요소로 등장하고 있으므로, 정부출연연구기관들도 일정 부분 시장니즈를 반영한 개방형 R&D를 통해 경제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시장니즈에 대한 사전연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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