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근만 한국은행 대전충남본부장 |
이에 그리스 정부는 시장의 신뢰회복을 위해 서둘러 재정안정화 계획을 발표했지만, 이는 공공부문의 임금 삭감, 연금지급 축소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자국민의 고통분담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더욱 큰 문제는 이러한 재정위기의 불안감이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 아일랜드 등 인접해 있는 남부유럽 국가들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전세계 주가와 환율이 급변하는 등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이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국가 재정위기가 또 한 번 세계경제를 위기로 몰고 갈 수도 있다는 경고까지 내놓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 상황일까? 일단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는 절대적인 수준에서 볼 때 높지는 않은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2008년 OECD 국가의 GDP대비 국가채무비율 평균이 78.7%임을 감안할 때 2009년말 기준으로 35.6%(기획재정부 전망)에 불과한 우리나라의 재정건전성은 상대적으로 매우 양호해 보인다. 해외에서도 우리나라는 건전한 재정을 바탕으로 이번 위기상황에 훌륭히 대처한 국가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이러한 단순비교로 국가별 재정건전성을 판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일례로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의 2009년 국가채무비율이 112.6%인 반면, 일본은 동 비율이 200%를 넘었으나 아직 큰 문제가 되고 있지 않다. 국가마다 감당할 수 있는 채무수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적정 채무수준은 그 나라의 소득 규모 및 산업구조, 대외의존도 등 처한 경제상황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수출입이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90%를 넘을 정도로 대외의존도가 높아 외부충격에 취약한 경제구조를 갖고 있다. 또한, 주요 선진국들과 비교하여 1인당 국민소득도 아직 낮은 수준에 불과하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도 결코 작은 수준이 아닐 수 있다.
국가채무 증가속도 또한 우려되는 부분이다.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국가채무가 증가한 것은 전세계적인 현상이고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국가채무 증가가 위기 이전부터 가속화된 현상이라는 데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비율은 1997년 12.3%에서 2009년에는 35.6%까지 급상승했다. 1997~2008년중 OECD 국가들의 국가채무비율이 71.1%에서 78.7%로 큰 변화가 없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최근 일부에서는 막대한 규모의 공기업 부채가 국가채무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물론 자산 증가를 수반하는 공기업 부채를 무조건 국가의 채무로 인식하는 것은 논리상 맞지 않은 측면이 있고 국제기준에서도 아직까지는 공기업 부채를 국가채무에서 제외하고 있다. 그러나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주요 국책사업들이 정부가 아닌 공기업에 의해 추진되고 있고 공기업의 부채 증가가 부실로 이어지면 결국 재정이 이를 부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공기업 부채 증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세계경제의 더블딥 우려가 상존하는 현 상황에서 단기간에 재정정책의 기조를 긴축으로 돌리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뿐더러 중장기적으로 볼 때도 고령화에 따른 세수기반 약화와 사회복지부담 증가 등으로 국가채무는 더욱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지금부터라도 경제성장에 적정한 국가채무수준에 대한 연구와 중장기적인 재정안정계획을 바탕으로 국가채무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인 것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