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선]언론인으로서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 스님

  • 오피니언
  • 사외칼럼

[이승선]언론인으로서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 스님

[금요논단]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승인 2010-03-25 15:05
  • 신문게재 2010-03-26 20면
  •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다소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법정 스님은 언론인이었다. 1973년 법정 스님은 '불교신문'의 논설위원과 주필을 지냈다. '불교신문'은 당대의 고승인 청담, 숭산과 같은 큰 스님들의 자취가 배어 있는 신문이다. 법정은 월간 평론잡지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했다.

▲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기독교인 함석헌이 창간한 '씨알의 소리'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가로쓰기를 하고 한글만을 사용하였다. 법정은 35년 전에 미리 써 둔 '미리 쓰는 유서'라는 글에 내생에도 다시 한반도에 태어나고 싶다고 적었다. 이 나라를 버릴 수 없는 까닭은 모국어에 대한 애착 때문이라고 했다. 한글로 애만지고 다듬은 결고운 글과 한글을 바로 세워서 만들어 낸 샘물소리 같은 말들은 법정이 대중과 소통하는 훌륭한 기제였다.

잘 아는 것처럼 김수환 추기경 역시 틀림없는 언론인이었다. 그는 1963년부터 2년 동안 '가톨릭시보사' (현 가톨릭신문) 의 사장으로 일했다. 추기경의 표현에 의하면 신문사 사장 시절은 그의 일생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일에 매달린 때였다. 신문에 게재되는 사설 (社說)은 거의 대부분 추기경이 직접 썼다. 한국 교회의 변화와 쇄신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추기경은 유명한 목사와 스님, 명사들에게 고쳐야 할 단점이 무엇인지를 묻는 편지를 보냈다. 그들이 보내온 답장 원고들을 토씨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신문에 게재했다고 전해진다. 뿐만 아니라 추기경은 '평화신문', '평화방송라디오', '평화방송케이블TV'를 창설해 운용했다. 말과 글을 통해 추기경은 대중과 소통했다.

법정 스님과 김수환 추기경은 서로 다른 종교적 터전에서 삶을 살았다. 커뮤니케이션의 토양도 달랐다. 서양의 언론은 '말'의 역사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복음에 기초한 기독교의 서양은 정치적 설득이나 법정의 변론을 위해 말을 잘하는 기술을 요구했다. 말문을 열어서 토론하고 웅변하는 힘은 서양의 정치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필수품으로 여겨졌다. 불교의 동양 언론은 말을 경계한 '글'의 역사다. 말문을 닫아걸고 묵묵히 침묵할 수 있는 힘은 진리를 깨우치기 위한 바탕이었다. 동양의 정치시장에 입성하기 위해서는 글의 뜻을 글로써 헤아려 쓰고 글로 문장을 잘 짓는 기술이 요구되었다. 동양의 과거제는 글쓰기 시험장이었다.

기독교에 기반한 서양의 말 문화와 불교적 토양을 가진 동양의 글 문화는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 스님의 한글 나라에 와서 소통하고 융합하였다. 글을 다듬어 쓰고 말을 아껴서 풀어놓는 것의 가치가 빛났다. 추기경은 길상사 법당을 찾아 '설법'을 하고 스님은 명동 성당을 방문해 '강론'했다. 세속의 셈법으로 추기경은 마흔 넷, 법정은 마흔 셋의 나이에 사설을 직접 쓰는 신문사 사장과 사설 쓰기가 본업인 논설위원, 주필의 역할을 수행했다. 두 분을 감히 언론인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제도권 언론사에 발을 담가서가 아니라 추기경의 말씀처럼 자기 것을 조금씩 상대방에게 양보해 대화하고 화합하는, 소통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스님의 말씀처럼 추기경은 '하느님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지만 그 존재로서 지금 우리가 하느님과 함께 있음을 영혼으로 감지하게 하는 사람'이었다. 추기경에게 스님 역시 모든 걸 무소유하더라도 그의 '무소유' 언론만큼은 소유하고 싶은 존재였다.

언론인을 참칭하면서 오히려 언론을 농단하려는 사람들, 말과 글로 소통하려는 대신 일방적인 힘으로 불통을 불러오는 사람들이 넘쳐 난다. 이미 정치권으로 입성한 언론인 연하는 정치인과 정치권에 발을 담그려는 정치인 같은 언론인들로 시국이 혼미하다. 언론은 권력을 행사하는 자가 아니라 권력의 행사를 감시하는 자다. 언론은 대중 위에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대중의 입 높이에 자신의 귀를 맞추어 소통하는 존재다. 종교든 언론이든 정치든 모두 '소통'하는 사람들의 장이다. 스님의 하느님, 추기경의 부처님처럼 제대로 소통해주기 바란다. 소통의 첫 발은 (말하기 전에) 듣는 귀를 여는데 있다고 한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상명대, 제25회 대한민국 반도체설계대전 'SK하이닉스상' 수상
  2. 충남대병원, 만성폐쇄성폐질환 적정성 평가 1등급
  3. 생명종합사회복지관, 제15회 시가 익어가는 마을 'ON마을축제'
  4. 서구 소외계층 60가정에 밑반찬 봉사
  5. 샛별재가노인복지센터 생태로운 가을 나들이
  1. [날씨] 단풍 절정 앞두고 이번 주말 따뜻한 날씨 이어져
  2. 한국건강관리협회, 창립 60주년 6㎞ 걷기대회 개최
  3. 대전 노은지구대, 공동체 치안 위해 '찾아가는 간담회' 실시
  4. 찾아가는 마을돌봄서비스 ‘마음아 안녕’ 활동 공유회
  5. 외출제한 명령 위반하고 오토바이 훔친 비행청소년 소년원행

헤드라인 뉴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 대전에 집결한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 대전에 집결한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이 대전에 집결한다. 대전시는 '2025년 중소기업융합대전'개최지로 25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올해 행사에서 대회기를 이양받았다. 내년 대회는 대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다. '중소기업융합대전'은 중소기업융합중앙회 주관으로 중소기업인들 간 업종 경계를 넘어 교류하는 것이 목적이다. 분야별 협업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지역별 순회하는 화합 행사 성격도 띠고 있다. 2004년 중소기업 한마음대회로 시작해 2014년 정부 행사로 격상되었으며 2019년부터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공동으로 개최하고 있다..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의 한 사립대학 총장이 여교수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경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대학노조가 총장과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대학 측은 성추행은 사실무근이라며 피해 교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A 대학 지회는 24일 학내에서 대학 총장 B 씨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여교수 C 씨도 함께 현장에 나왔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C 씨는 노조원의 말을 빌려 당시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C 씨와 노조에 따르면, 비정년 트랙 신임 여교수인 C 씨는..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20대 신규 대원들 환영합니다." 23일 오후 5시 대전병무청 2층. 전국 최초 20대 위주의 자율방범대가 출범하는 위촉식 현장을 찾았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원한 신입 대원들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첫인사를 건넸다. 첫 순찰을 앞둔 신입 대원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맞은 편에는 오랜만에 젊은 대원을 맞이해 조금은 어색해하는 듯한 문화1동 자율방범대원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위촉식 축사를 통해 "주민 참여 치안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자율방범대는 시민들이 안전을 체감하도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장애인 구직 행렬 장애인 구직 행렬

  •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