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찬 대전대 교수 |
그랬다. 내 유년의 고향은 육군 훈련소가 있는 연무대이고 내가 입학한 학교는 구자곡 초등학교다. 1학년을 겨우 마치고 떠난 나는 군에 입대하면서 다시 그곳을 대면하게 됐다. 사격 훈련을 받으러 사격장을 향하던 길에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계단을 올라가 만나게 되는 교문, 담장 너머로 보이는 운동장, 주변의 언덕과 논둑길은 기억 속에 살아 있는 초등학교의 모습 그것이었다. 가슴에 손수건을 달고 입학한 초등학생이 총을 들고 구보를 하는 훈련병이 돼 있었던 것이다.
그날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이 다음 제대를 하면 다시 찾아보리라 약속을 했다. 그러나 이후의 삶은 약속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유년의 시절로 돌아오기까지는 그만큼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동안 나는 학업을 마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고 직장을 얻었다. 그리고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다시 찾아올 수 있었다. 학교와 재회를 한 그날 나는 흐뭇하고 행복했다. 아내도 좋아했고 아이들도 신이 났다.
내 눈에 들어온 학교는 달라지지 않았고 또 달라져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운동장에서 화단으로 교실 건물을 돌아 뒤뜰로 발걸음을 옮겨보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거기에는 말을 탄 장군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 게 아닌가? 유모차를 끌고 다가가 보니 그것은 계백 장군의 동상이었다. 칼을 차고 창을 들고 이제 막 돌진하려는 듯 앞을 향해 눈을 부릅뜬 장군의 모습이었다. 말도 주인의 진격 소리를 기다리는 듯 고개를 수그린 채 발굽을 까딱거리고 있었다. 그 날 나는 뜻밖에 마주친 계백 장군의 동상 앞에서 두 아이를 상대로 열심히 설명을 해댔다. 계백 장군과 오천 결사대를 비롯해 김유신 장군과 화랑 관창의 이야기까지 신이 나서 들려주었다. 출정에 앞서 노비로 떨어질 것을 염려해 가족을 칼로 베었다는 사실만 빼고는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다 해주었다. 유감스러운 것은, 그러나 내가 아는 계백 장군의 이야기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병주의 소설 산하에 보면 “태양에 바래지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는 말이 나온다. 지리산을 헤집고 다니던 지난 시절의 젊은 영혼들 및 그들의 남은 삶에 대한 소설가의 헌사로서 널리 알려진 말이다. 그런데 그 말이 나에게는 진리를 뛰어넘는 눈부신 경구가 되어 다시 다가왔다. 그렇게 보면 계백의 삶도 신화가 되어버린 것이 아니던가. 비류백제도 그렇고 해상왕국도 그럴 것이다. 고구려 및 신라와 자웅을 겨루고 한반도 주변 바다를 거침없이 누비던 백제의 역사가 모두 다 신화가 되어버린 것이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서 '2010 세계대백제전' 광고를 만났다. 신호를 기다리는 시내버스의 옆구리에는 대백제전을 알리는 산뜻한 로고와 마스코트가 걸려 있었다. 그 순간 백제를 떠올렸고 계백 장군을 생각하게 되었다. 문득 대학생이 된 큰아이 얼굴도 눈에 어른거렸다. 주말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논산으로 연무대로 구자곡 초등학교로 찾아가봐야겠다. 계백 장군의 동상 앞에 아이들을 세워놓고 역사는 무엇이고 신화는 무엇인지 이제는 이야기를 나눠도 될 만큼 꼭 그 정도의 시간이 또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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