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길구 충남역사문화연구원 경영기획실장 |
실제로 많은 기관에서 기록물에 대한 전문가를 채용해 기록물 관리에 힘쓰는 등 관리에 철저를 기하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정부에서 추진하는 기록관의 수집범위가 주로 현대에 생산되는 기록물에 대한 정리 및 보존에 그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하나는 배달민족의 영산(靈山)이자, 충청인의 안식처인 '계룡산'이다. 계룡산은 예로부터 신라 때는 오악(五嶽) 중 서악(西嶽)으로, 조선 때는 삼악(三嶽) 중 중악(中嶽)으로 지정돼 국가에서 제사지내고 관리했다. 또한 계룡산 주변지역은 백제의 고도(古都)인 공주, 부여가 위치하고 있어 문화유산이 풍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은 기록물이 빈약한 실정이다.
계룡산에 대한 아카이브를 구축해야 하는 이유는 대략 다음과 같다.
우선 계룡산이 풍수·도참설에 의한 국도예언지라는 사실이다. 계룡산은 다른 많은 산과 달리 풍수 지리적으로 대길지(大吉地)이며 도참설(圖讖說)에 의한 천도(遷都)의 대상지였다. 대표적인 민간비결서 중 하나인 정감록(鄭鑑錄)에는 계룡산이 800년 도읍의 땅으로 언급돼 있다. 이 때문에 수도이전지로 주목을 받았는데 대표적인 것이 조선 태조 이성계의 신도안 대궐공사와 대원군의 계룡이도설(移都說)이다.
두 번째로 신흥종교(민속자료) 역사의 보고(寶庫)라는 사실이다. 계룡산 내 신도안은 토착종교는 물론 신흥종교들의 뿌리였다. 수백 개의 종교단체들이 이곳에 은거해 한국의 대표적인 종교촌이 되었으며 수차례에 걸쳐 철거되기도 한 역사의 산실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620사업 이후 상당수 소실되고, 그나마 남은 기록물조차도 점차 유실되고 있다.
세 번째는 세계문화유산 후보로 선정 될 만큼 값진 주변환경을 가지고 있다.
계룡산은 앞서 말한 역사적인 의미도 크지만 식물, 동물 등 생태계의 종합전시장이라고 할 만큼 뛰어난 자연환경을 갖고 있다. 유네스코가 정한 분야로 보면 아름다운 문화유산과 역사도시라는 두 가지 명제에 해당할 만큼 소중한 곳이기도 하다.
이처럼 계룡산은 다른 나라나 지역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역사적인 조건과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다 신도안이라는 소중한 종교문화자원을 지니고 있어 다른 지역과는 차별성을 갖고 있다.
우리는 198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중국의 태산(泰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태산은 중국의 역대 왕조들이 제천의식을 행했던 곳으로 중국 고대문명과 신앙의 상징이다. 이는 계룡산이 국가의 제사처이자, 민속신앙의 메카인 것과 비슷하다.
“현재의 모습을 정확하고 철저하게 기록해 문서로 남기지 않으면 민주주의도 없고 지방분권도 없으며 역사도 없다”는 어느 역사학자의 말이 기억난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부터라도 소실된 계룡산 관련 기록물을 수집해 보존해야 한다. 계룡산과 관련한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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