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기천 전 서산시 부시장 |
굴원은 왕의 신임을 얻어 고위관직에 올랐으나, 여러 차례 충간을 하다가 왕과 동료 신하들의 미움을 사서 결국 파직을 당하고 조정에서 쫓겨나 초췌한 몰골로 상강(湘江)의 물가를 거닐며 시를 읊조리고 있었다. 이때 한 어부가 다가와 굴원에게 물었다.
“그대는 초나라의 대부가 아니시오? 어찌해 이곳에 오게 되었소?”
굴원이 대답했다.
“세상이 온통 흐려 있는데 나 혼자 맑았고, 뭇사람들 모두 취해 있는데 나 혼자 깨어 있었기에 이렇게 쫓겨나게 됐다오.”
추사(秋史) 김정희(正喜)의 작품 중에 그 유명한 '세한도(歲寒圖)'가 있다. 제주도에 유배되자 가깝던 친구들마저 등을 돌려 외면했을 때도 변함없이 서적을 구해 보내준 제자 이상적(李尙迪)에게 그려준 그림이다. '여름 철 모든 것이 초록일 때는 소나무·잣나무의 푸름은 특별히 드러나 보이지 않지만 겨울이 돼 모든 나무가 잎을 떨어뜨린 뒤에야 송백(松柏)의 청청(靑靑)함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겨울철 홀로 푸른 소나무를 읊은 시조로는 '사육신(死六臣)'의 한 사람인 성삼문(成三問) 선생의 '…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 때 독야청청하리라'가 전해 온다. 주위의 나무들이 푸르렀던 잎을 모두 떨어뜨리고 온 산하가 흰 눈으로 덮여 있을 때 홀로 푸르게 남고 싶다는 지조와 충의정신을 글로 남겼다.
어느 학자는 조직사회 구성원을 '순응형(順應形)', '저돌형(猪突形)', '고호형(孤狐形)' 등 세 가지로 분류한다.
먼저 '순응형'은 '출세형(出世形)'이라고도 하는 데, 이런 사람은 조직이 지향하는 목표나 상사의 의도에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가 속해있는 조직이나 상사의 뜻에 순순히 따를 뿐 자기의 의견은 좀처럼 표현하지 않는다. 오로지 정해진 방향으로 나가는데 앞장서거나 착실하게 따르는 모범생이다. 윗 사람에게는 공손하면서 아랫사람에게는 엄격한 면도 있다. 이러한 품성은 천성적으로 타고 났거나 처세술로 익히기도 한다.
'저돌형'은 저항적이거나 의문형의 기질을 가졌다. 무조건 대세에 따르지 않고, 맹목적으로 때와 장소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는다. 자의식(自意識)이 강하고 의리를 중시한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것보다는 자기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주위사람과 융화하지 못해 마찰을 빚는 때도 있다. 이런 사람은 좋은 방안이나 고쳐야 할 것을 찾아내 '옳은 말'을 하여도 '바른 말'을 하는 사람으로 경계를 받게 되고 '모난 돌이 정을 맞는 처지'가 된다. 하지만 조직에서 꼭 필요한 인물이면 중용되기도 한다.
'외로운 여우'의 뜻을 가진 '고호형'은 외톨이형이다. 사람과 잘 어울리지 않고 조직의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한다. 자기의 의견을 좀처럼 말하지도 않고 소극적, 방관자적인 자세를 취한다. 소리없이 맡은 일을 해내지만 때에 따라서는 있는 듯 없는 듯 그런 존재로 여겨지기도 한다.
물론 사람의 품성을 혈액형처럼 한 가지로 정형화하기는 어렵다. 사람도 주어진 여건과 닥친 상황에 적응을 하며 살아가는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여러 사람들이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자기 나름으로의 삶의 방식대로 사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시름을 주거나 조직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면 누가 이를 탓하거나 간섭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 하겠다.
그러나 혼탁한 세태에 물들지 않고, 소신과 양심을 가치관으로 삼아 '모두 취해 있는 데 홀로 깨어있는 의식'을 읊은 글 한 수, '나뭇잎이 다 떨어진 뒤에야 그 푸름이 드러나는 진리'를 강조한 그림 한 장이 주는 의미는 결코 가볍다 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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