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만 함께하는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
사람의 대화를 녹음한 행위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던 사건은 14대 대선을 며칠 앞두고 발생한 '부산 초원복집 사건'과 '삼성 X파일 사건'이, 필자가 변호사로서 관여했던 사건으로는 2006년 지방선거 예비후보 경선 당시 '식당 녹음사건'이 필자의 기억에 남아있다.
앞의 두 사건은 모임 참여자가 아닌 사람이 몰래 모임 참여자들의 대화를 녹음한 이른바 '도청'한 경우이고, 후자는 모임 참여자 중 한 사람이 몰래 대화 내용을 녹음한 경우로 법적인 평가는 다르다고 볼 수 있다.
대화의 비밀과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통신비밀보호법 제14조 제1항은 '누구든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청취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타인간의 대화'는 녹음·청취하는 사람이 대화에 참여하지 않은 경우이고, 대화에 참여한 사람이 타인의 동의 없이 녹음·청취하는 경우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해석되며 판례도 같은 입장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과의 대화나 통화 중 상대방의 동의없이 그 내용을 녹음했다 하더라도 처벌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원칙적으로 범죄가 되는 도·감청의 문제가 아닌 일반인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대화나 통화내용을 녹음해 놨더라면 하고 후회한 경험이 누구나 한번쯤은 있었을 것이고, 실제 녹음을 한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필자도 변호사 업무나 정당활동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이 많다 보니 과거 대화 내용의 진위가 문제되는 경우가 없지 않다.
'버선목이라 뒤집어 보이나'라는 속담도 있듯이 자신이 말한 내용이 왜곡돼서 다른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을 때 많은 사람이 '녹음이라도 해 놓을 걸…'하고 아쉬워 할 것이다.
사람의 말이 기계와 같이 정확하게 전달될 수 없다는 한계는 있겠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신뢰의 상실이라고 생각한다. 대화하는 사람을 믿지 못하고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녹음하는 사회는 신뢰가 무너져가는 사회다.
이처럼 신뢰를 잃고 녹음하는 사회를 생각하며 옛 성현의 가르침을 떠올려 본다. 논어의 안연 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자공이 스승에게 “정치가 무엇이냐”고 묻자, 공자는 “족식(足食), 족병(足兵), 민신지의(民信之矣·백성을 배불리 먹이고, 국방을 튼튼히 하고, 백성들이 믿게 하는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자공이 “식·병·신(食·兵·信) 중에서 부득이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버려야 하느냐”고 물었을 때, 공자는 “병(兵·군대를 버려야 한다)”이라고 말했다.
자공이 “남은 둘 중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버려야 하느냐”고 물었을 때, 공자는 “식(食·식량을 버려야 한다)”이라고 하면서, “자고개유사 민무신부립(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자고로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하지만 국민의 신뢰가 없으면 국가가 성립할 수조차 없는 것이다)”이라고 대답했다. '무신부립(無信不立)'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긴 유래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많은 정치인들에게 식·병·신(食·兵·信) 중 마지막까지 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답할까? 정말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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