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 영희 신자는 기초생활수급대상 노인들. 온갖 허드렛일을 하며 살아가는 그들은 얼마 뒤면 지긋지긋한 서울을 떠난다는 생각에 들떠 있다. 하와이 관광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 이 악물고 돈을 모았던 그들은 디데이를 앞두고 그만 은행 강도에게 돈을 다 털리는 봉변을 당한다.
영화 ‘친구’에서 동수가 “니가 가라. 하와이”라고 매몰차게 가기를 거절했던 하와이. 하지만 꼭 그 곳에 가야 하는 이유를 가진 할머니들이 있다. 8년 동안 악착같이 모은 경비 837만원. 그 피 같은 돈을 여행사에 송금하려는 순간, 들이닥친 은행 강도에게 몽땅 빼앗겼으니 할멈들 뿔이 날만도 하다. 살날 얼마 안 남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할멈들에게 두려울 게 뭐가 있겠나. 그러니 따지지 말자. 그깟 여행경비 800만원을 되찾기 위해 할멈들이 두건 쓰고 은행 터는 게 말이 되느냐고.
‘평균 나이 65세 최고령 은행 강도단.’ ‘육혈포 강도단’의 홍보 문구는 웃자고 만든 영화임을 분명히 한다. 하지만 영화는 곧바로 시끌벅적한 코미디로 걸음을 떼지 않는다. 극 초반, 공을 들이는 건 세 할머니의 고단한 일상이다. 월세 독촉에 어깨를 늘어뜨리고, 김치 공장에서 뻐근해진 어깨를 다독인다. 화장실 청소에 지친 육신을 담배 한 개비로 달랜다. 이들은 자식이 없거나, 있어도 있으나 마나다.
할멈들이 속곳에서 눈깔사탕 대신 리볼버를 꺼내드는 건 강탈당한 여행경비 때문만이 아니다. 사실 그들이 조준하고픈 과녁은 따로 있다. 영희는 딸에게 못된 어미라고 면박 듣고, 신자는 손자에게까지 돈 벌어오라는 책망을 듣는다. 정자는 못된 피붙이조차 없는 독거노인이다. 할멈들의 총이 겨냥하는 곳은 막돼먹은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그러니 경찰과의 대치 끝에 포위망을 뚫고 도망치는 할멈들이, 은행 안에 있던 그들이 도대체 오토바이를 어디서 구한 거냐고 따지지 말자.
영화가 끝날 때까지 관객들의 웃음은 멈출 줄 모른다. 도시를 휘젓는 할멈들의 소동을 맛깔나게 버무렸다고 말하기 어려운 영화지만, 셋이 합쳐 연기 공력 100년이 넘는 노련한 주연배우 3인방이 웃음을 보장한다. 그들은 번갈아가며 지르고, 말리고, 푼다. 나문희는 정극과 희극을 조율하는 고수이고, 김수미는 대사인지 애드리브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능청스러운 연기로 관객의 혼을 빼놓는다. ‘할미넴’이란 별명을 얻을 정도로 폭포수처럼 쏟아내는 김수미의 욕설도 이 영화가 주는 재미다. 김혜옥의 철부지 공주 할머니 연기도 귀엽다.
할머니들에게 붙잡힌 강도 임창정이 협박에 못 이겨 체력 훈련, 사격 훈련, 작전 분석 등 강도 교습을 하는 장면은 배꼽을 쥐게 만든다.
감동 코드는 강화됐다. 새드 엔딩으로 마무리되는 시점에는 예상치 못한 여운을 남긴다. 하지만 할머니들이 은행털이에 나선 이유가 시한부 인생과 젊은 시절의 깊은 상처 때문이라는 식의 설명은 뜬금없다. 웃기다가 울리는 게 한국 코미디의 공식이라고는 하지만 그 시점이 뒤섞여 헷갈리는 것도 문제다.
정신없이 웃다가 콧잔등이 시큰해지는 감동을 맛보고 싶은 관객이라면 꽤 흡족해할 오락영화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