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외곽의 작은 섬 셔터 아일랜드. 중범죄를 저지른 정신병자를 격리 수용하는 그곳 병원에서 환자 한 명이 사라진다. 연방보안관 테디와 처크는 수사에 나서지만 단서를 찾을 수 없다. 자식 셋을 물에 빠뜨려 죽인 여자 환자는 모호한 쪽지만 남기고 완벽하게 사라졌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마틴 스코시즈. 둘의 만남만으로 ‘셔터 아일랜드’는 기대감을 부풀린다. 이름값을 하는 배우와 감독이고, ‘갱스 오브 뉴욕’ ‘에비에이터’ ‘디파티드’에서 환상적인 호흡을 보여줬기 때문. 게다가 지난 2월 미국에서 개봉돼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고 외신들도 호평 일색이다. “당신이 이전에 보지 못했던 스코시즈의 작품”(폭스TV), “모던 시네마의 거장이 의욕적으로 만든 스릴러”(NBC), “스코시즈가 다시 한 번 큰일을 저질렀다”(CBS) 등등.
‘셔터 아일랜드’는 미국 보스턴 외곽의 작은 섬, 셔터 아일랜드에서 나흘 반나절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다. 외양은 할리우드 고전 스타일의 필름누아르다. 그러나 영화는 불안과 광기, 현실과 초현실의 세계를 넘나든다. 미스터리와 심리스릴러, 사회드라마, 고딕호러와 섬세한 연기를 결합해 어두컴컴한 미로를 꾸며놓았다.
몽환적이고 음울하다. ‘셔터 아일랜드’의 배경은 1954년. 2차 세계대전 뒤 심리적으로 충격에 휩싸인 미국인들은 광기와 진리에 대한 갈구, 그리고 현실감의 부재로 괴로워했다. 디카프리오가 연기하는 테디는 당시 미국인에게 내재한 이 집단 무의식을 떠안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아내를 죽인 방화범을 찾으려하지만 그 자신 광기와 폭력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정신분열증에 시달리다 파멸해간다. 영화는 그의 불안과 공포를 집요하게 스크린에 펼쳐놓는다.
2시간 18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의 반 이상이 테디의 환영 장면으로 채워진다. 테디의 상처 입은 내면이 토해내는 환각은 끔찍한 장면임에도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게 채색됐다. 특히 컴퓨터그래픽의 도움으로 완성된, 꽃가루가 날리는 것처럼 날리는 재를 포착한 장면은 불에 타죽은 아내를 떠올리는 끔찍한 내용임에도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꼽을 만하다.
스코시즈는 슬픔으로 인해 정신적 외상에 시달렸던 여자와 살아남았으되 죄책감에 벗어나지 못하는 남자를 직시한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가 망가지지 않으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묻는다. 극중 정신병자들은 우리가 눈길을 돌려야 할 존재가 아니라, 우리의 또 다른 얼굴이다. 현실을 예민하게 감지하는 그들은 잘못된 세상의 징후와 같다. 곁의 누군가가 미쳐버렸을 때, 그의 광기가 영혼과 몸을 갉아먹게 내버려둔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둡다. 미래는 함께 개척해나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웅변한다.
최근 스릴러의 한 경향인 ‘반전’이 ‘셔터 아일랜드’의 클라이맥스를 이룬다. 그러나 그 반전이라는 게 조금 예리한 관객이라면 익히 짐작할 수 있는 수준이다. 영화 또한 기절초풍할 결말로 관객들을 깜짝 놀라게 해줄 마음이 없다. 스코시즈가 이 스릴러를 완성하는 데 역점을 둔 부분은 ‘인물을 끈질기게 파헤치는 것’, 그리고 ‘마음속의 지옥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 열정이 강렬하다. 특히 히치콕을 오마주한 것이 분명한 장면들, CG의 컬러와 역동성을 빌려와 망상을 극대화한 이미지, 전설적인 그룹 ‘더 밴드’의 멤버였던 로비 로버트슨이 직조한 현대음악의 향연 속에서 스코시즈 영화의 풍성함이 쏟아진다. 귀를 기울이면 백남준의 ‘존 케이지에게 바치는 경의’도 들린다.
스코시즈는 데니스 루헤인의 베스트셀러 원작을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섬세한 촬영과 미술 음악 편집을 완벽하게 조화시켜 품격 있는 스릴러로 빚어냈다. 문제는 그 모든 걸 갖추고도 장르적인 재미나 영화적 감흥이 살아나지 않는다는 거다. 관객이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고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할만한 통로가 차단돼 있으니. 빼어난 수작이지만 기념비적인 장르영화가 되기엔 2%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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