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수찬 목원대 교수 |
한국사회는 진정한 다문화주의로 진화하고 있는가? 최소한 문화적 측면에서 보면 그렇다. 프랑스 보르도 지방이나, 칠레 나파벨리의 와인, 인도의 카레, 베트남의 쌀국수를 즐겨먹는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다문화주의를 문화적 다양성을 즐기는 것으로 이해하면, 다문화사회로의 진화는 본궤도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다문화주의란 문화적 다양성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다문화주의는, 문화주의적 이해 보다는 정치적 공동체에 대한 이해를 우선으로 한다. 다시 말하면, 다문화주의란 다양한 종(種)의 인간이 동등한 정치적 권리를 가지고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한국사회는 미국과 같이 열린사회를 지향하고 있는지, 아니면 일본과 같이 닫힌 사회를 지향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물어 봐야 한다. 1619년 버지니아 제이스톤에 아프리카 노예선박이 처음으로 입항한 지 400년이 지난 후, 노예의 후예인 오바마가 44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바마가 있기까지 미국사회는 인종, 종교, 피부색깔에 관계없이 공존하기 위한 정치적 투쟁을 벌였고 법과 제도를 개선해 왔다.
192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은 아시아, 흑인, 라틴계들을 규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종과 국적에 따른 이민 할당제를 실시했다. 1965년 10월 3일 존슨 대통령이 뉴욕 '자유의 여신상' 앞에서 이민과 국적법에 사인함으로써 인종차별적 이민법이 종식됐다. 그 이후 미국은 닉슨의 '증오의 정치'를 최소화하고 링컨의 '화해의 정치'를 극대화해 다문화 사회를 지향해 왔다. 그 결과 지구상에서 인종적 편견이 없는 가장 다이내믹한 사회가 됐다.
그러나 30년 이상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을 지속해 1980년대 후반 미국을 위협했던 일본은 어떤가? 일본은 외국인에 대한 뿌리깊은 혐오와 저항감 때문에 고립주의를 선택했고, 1990년 초 이후 18년 넘게 경제 침체의 늪에 빠져 있다. 섬나라의 고립주의, 지역적 편협주의, 권위주의적 수직적 사회구조, 그리고 외국인 이민에 대한 뿌리깊은 저항감으로 인해 일본은 깊숙이 고립화된 나라로 빠져들고 있다.
2008년 퓨 서베이(Pew Survey)에 따르면 23개 선진국가 중에서 일본사람이 자신들의 사회의 미래를 가장 어둡게 전망하고 있다. 일본이 닫힌 사회로 가면서 무기력해지고 다이내믹을 잃게 되면서, 히키고모리(사회생활을 포기한 사람), 수고모리(인터넷에서 하루 종일 쇼핑만 하는 사람), 쇼수쿠이카이 댄샤이(일자리 찾기를 포기한 사람들)가 급속도로 늘고 있다. 뿐만 아니라 G8 국가들 중 러시아 다음으로 자살률이 높은 국가가 됐다.
일본은 근대사회에서 사회적 통합의 가장 중요한 토대였던 민족국가적 정체성에 매달렸다. 근대 국민국가들이 지향했던 타인종, 타민족에 대한 정치적 배제시스템을 고수했다. 이러한 정체성의 원리가 한 국가에서 여러 인종과 민족이 서로 다른 문화와 종교를 가지고 함께 살아가는 글로벌 시대에는 사회적 통합과 정치적 미래를 위한 원리일 수 없었다. 우리사회는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아 다문화 사회를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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