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홍규 전 대전시 정무부시장·변호사 |
관광객들은 앙코르와트를 들른 다음, 아름다운 일몰, 수상가옥, 보트피플을 보기 위해 '똔레샵' 호수로 몰려든다. 맑고 아름다운 호수, 그곳에서 낚은 대어, 맛있는 요리, 수상별장, 이런 것들에 익숙한 눈으로.
그런데, 눈앞에 펼쳐진 것은 진한 황톳물로 황금의 빛깔을 띤 '똔레샵' 호수, 그 탁한 물 빛깔만큼이나 진하게 그을린 그곳 주민들의 삶, 그 중에서도 가장 처절한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름하여 '똔레샵'의 베트남인 보트피플! 베트남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휩싸였을 때, 그들은 전쟁을 피해 가족 단위로 배를 타고 메콩강을 거슬러 올라와 '똔레샵' 호수에 자리를 잡고 살아가고 있었다.
전쟁이 끝나자 그들은 배를 타고 메콩강을 따라 내려가 베트남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베트남은 '어려울 때 조국을 떠난 사람들'이라는 이유로 배를 막아 그들을 외면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똔레샵' 호수로 다시 거슬러 올라오게 되었는데, 크메르인들 역시 서로 전쟁을 벌여 온 역사 때문에 베트남인들을 싫어해, 그들은 '똔레샵' 호숫가 육지로도 나오지 못하고 수십 년 간 떠다니는 배 안에서 천대받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똔레샵' 호수에서 잡는 고기로 생계를 이어왔다. 그 물로 밥도 짓고, 빨래도 하고, 목욕도 하고, 그 물에 용변도 본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구토가 날 지경인 탁한 황톳물로 살아가는 사람들! 상점도, 철공소도, 관공서도, 학교도, 교회도 모두 떠다니는 배 위에 있다. 그곳 아이들은 관광객들이 타고 온 보트를 보면 작은 보트나 대야로 잽싸게 접근하거나 움직이는 보트로 뛰어들어 음료수나 맥주를 팔아 돈을 번다. 호수 가운데에서 위험천만하게 대야를 타고 앉아 목에 칭칭 감은 뱀을 보여주면서 “원달러”를 외쳐대는 깡마른 대여섯살 어린 아이들의 얼굴과 우리 아이들의 얼굴이 겹치면서 역사와 정치에 대한 상념에 젖어본다.
한때 '앙코르제국'이라고 불리는 세계 최고의 문화를 꽃피웠던 캄보디아는 식민지, 킬링필드의 아픈 근·현대정치사를 겪으면서 메콩강에 감추어진 오지로 전락한 지 오래다. 크메르 루즈는 자신들에게 대항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지식인들 모두를 죽음으로 몰아갔다. 배움이 곧 죽음이 되었던 역사는 아직도 문맹률 70%를 유지하게 만들고 있다. 실질국민소득이 500달러에 미치지 않는다고 하니, 그 가난의 실상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베트남인 보트피플뿐만 아니라, 그 나라 어디를 가도 가냘픈 손, 측은한 표정으로 '원달러'를 애걸하는 어린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초롱한 눈망울을 가졌지만, 가난한 그 아이들은 먹고 살기 위해 어릴 적부터 '원달러'의 손짓이 몸에 배어있는 듯하다.
그리 멀지 않은 우리의 과거는 어떠했던가! 식민지, 전쟁, 버려진 고아, 빈 깡통, 구걸하는 아이들, 옥수수 강냉이 죽, 눈물젖은 밀빵, 우리도 그들과 한치도 다를 바 없는 똑같은 수난의 역사를 갖고 있지 않았던가! 역사는 스스로 되풀이 된다고 했다. 우리는 아픈 과거를 쉽게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제 우리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가난한 이웃나라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방면에서 도움의 손길을 뻗치고 역할을 자임할 때다. '똔레샵' 호수에 작지만 우리가 세운 배 학교, 배 교회가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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