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정산 시인·대전대 교수 |
동계 올림픽 기간 중에 지방을 갔다 오다 역 대합실에서 바로 이 피겨 스케이팅 경기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일본의 피겨 선수 아사다 마오와 김연아 선수가 연달아 연기를 하고 있었다. 먼저 진행된 아사다 마오 선수의 연기를 보며 너무 조마조마했다. 혹시 실수해서 넘어지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서다. 그리고 흡족한 모습으로 마무리를 할 때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며 참 잘한다는 말을 입 밖에 내고 말았다. 그러자 모여 있던 여러 사람들이 '혹시 일본 사람 아니야?' 하는 듯한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은 “왜 쟤는 넘어지지도 않는 거야”라며 투덜거리기까지 하는 게 아닌가?
우리와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리고 우리나라 선수와 라이벌 관계라는 이유로 한 어린 선수가 실수하기를 바라는 강퍅한 마음을 우리가 가져야 하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스포츠를 스포츠 자체로 즐기면서 모든 선수들이 다 잘하기를 바라는 아량과 포용력을 우리는 왜 가지지 못하는 것인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동계 올림픽에서 우리가 5위에 들었다는 점을 크게 강조하면서 우리 국력의 신장과 민족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물론 같은 국민으로서 우리 선수들이 혁혁한 성과를 내고 온 것은 축하할 일이다. 하지만 그랬다고 하루아침에 우리나라가 훌륭한 나라가 되는 것은 아니다. 동계 올림픽 5위라는 기록이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살기 좋은 나라라거나 우리 국민이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훌륭한 국민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동계 올림픽에서 5위라는 큰 성과를 낸 것은 동계 올림픽 종목에 투자할 만큼 살림살이가 좀 나아졌다는 것과 일등만이 살아남는 엘리트 체육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에 그 원인이 있다. 참고로 이미 오래전에 선진국들은 이 엘리트 체육을 폐기하고 사회 체육으로 전환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프랑스나 일본 등이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동계 올림픽에서 딴 금메달이 우리 국가와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몇 조원의 경제적 효과를 낸다고들 언론에서 앞다퉈 떠들고 있다. 물론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대다수 국민들의 돈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올림픽이나 메달을 딴 선수들과 관련된 기업들의 이익일 뿐이다. 그리고 국민들의 성공을 국가의 성공으로 또 그것을 현 정부의 성과로 포장하려는 국가권력에 이익을 줄 뿐이다.
아직도 인터넷에는 일본의 피겨 선수 아사다 마오와 미국의 쇼트트랙 선수 안톤 오노를 비난하는 글들이 넘쳐나고 있다. 스포츠는 스포츠일 뿐이다. 스포츠가 국가를 흥하게 한다는 생각은 그저 헛된 희망일 뿐이다. 그리고 몇몇의 자본과 국가권력은 스포츠를 통해 이런 헛된 희망을 부추겨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한다. 스포츠 경기를 통해 다른 나라 선수를 미워하고 근거 없는 비난을 하는 민족적 편견에 사로잡힌 젊은이들이 아직도 다수 존재하는 한 우리는 선진국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그저 아직은 부끄러운 5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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