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공주·부여 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으로 등재됨에 따라 백제유적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발걸음이 빨라졌다.
공주·부여 역사유적 9개 지구는 공주 4개(공산성, 송산리고분군, 수촌리, 고마나루)와 부여 5개(부소산성, 정림사지, 나성, 구드래, 청마산성)등이다.
또 19개 유산은 공주 6개(공산성, 옥녀봉산성, 송산리고분군, 정지산유적, 수촌리고분군, 고마나루), 부여 13개(부소산성, 관북리유적, 정림사지, 쌍북리요리, 능산리사지, 능산리고분군, 부여나성, 청산성, 구드래 일원, 왕흥사지, 청마산성, 능안골고분군, 용정리사지)다.
▲ 정림사지 |
이번 잠정목록 등재는 공주 무령왕릉만으로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기 부족하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라 공주·부여 역사유적 9개 지구 19개 유산으로 변경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얻은 성과여서 그 의미를 더한다.
● 충남도 2015년 등재목표로 체계적 준비
잠정목록은 세계유산이 되기 위한 예비사항으로 유네스코 사무국이 회원국의 신청을 받아 심사를 거쳐 등재하며 잠정목록으로 올라간 뒤 1년이 지나면 세계유산으로 신청할 자격이 주어진다.
이에 충남도는 2015년 등재를 목표로 세계유산 가치창출을 위한 워크숍과 비교연구를 통한 보존관리계획 수립, 학술세미나, 공청회 등 다양한 사업을 체계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도 관계자는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까다롭고 엄격한 절차를 거쳐야하며 반려나 등재불가 판정이 내려지면 다시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서두르지 말고 충분한 연구와 준비를 거쳐야한다”며 “잠정목록 등재를 계기로 문화재청 등 관련기관과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탁월한 보편적 가치 충족해야
공주·부여 역사유적지구가 세계문화유산이 되기 위해서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충족해야하는데 이는 국경을 초월할 만큼 독보적이며 현재 및 미래세대의 전 인류에게 있어 공통적으로 중요한 문화 또는 자연적 중요성을 의미한다.
말은 그럴듯하지만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가지는 함의를 충족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OUV는 부여와 공주가 어떤 독창적 특성을 지니고 있는지, 또 이러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진정성(Authenticity)과 완전성(Integrity)을 지니고 있는지, 아울러 이런 본질에 의거해 사회·경제·문화적 변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지역이 어떻게 발전해 왔고 앞으로 지속적인 발전 가능성이 있는지 등에 대한 내용을 포함한다.
▲ 공산성 |
OUV를 인정받기 위한 요건 중 진정성은 어떤 물건이 진품이거나 어떤 역사적 사건(일)이 사실과 다름없다고 확인하는 질을 판정하는 개념으로 원래의 형태와 디자인을 유지하고 있는지, 원래의 소재와 재료, 용도와 기능, 위치와 환경을 유지하고 있는지를 평가한다.
이런 점에서 공주·부여 역사유적지구를 세계유산에 신청하기 위해서는 대상 유적에 대한 기초적인 학술자료가 우선적으로 갖춰져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해 서정석 공주대교수는 공주와 부여의 성곽과 고분을 예로 들어 “성곽의 경우에는 성벽의 둘레, 축성법, 부대시설의 종류와 규모, 출토유물 등이 밝혀져야 하고 고분도 입지, 축조방법, 현실의 구조, 부장품의 위치와 종류 등이 정확히 정리되어야한다”면서 “이러한 기초자료가 확보되면 이를 바탕으로 주제를 설정해야한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설정된 기초자료를 바탕으로 주제와 그에 부합되는 유산이 선정되면 등재기준을 설정해야하는데 세계유산 등재기준은 모두 10가지로 이중 문화유산에 해당되는 것은 6가지다.
이 6가지 등재기준 중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낸 걸작을 대표하는 것이 석굴암과 불국사이며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내에서 건축이나 기술발전, 기념비적 예술, 도시계획, 또는 조경 설계의 발전에 관한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류를 반영하는 것이 경주역사지구와 수원화성, 창덕궁이다.
이런 등재기준 선정에 있어 유의할 점은 여섯 가지 조건 중 단 한 가지만 충족시켜도 세계유산에 등재된다는 것과 여러 가지를 적용하다고 해서 등재에 유리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 국내외 유사유산과 비교연구 필요
신청하고자 하는 대상 유적의 기초자료가 도출되고 이를 바탕으로 등재기준이 마련되면 유산 등재에 대한 정당성(Justification)이 강조되어야하는데 정당성은 유사 유산과의 비교, 체계적인 보존관리계획의 수립과 함께 세계문화유산 등재의 3요소로 꼽힌다.
아울러 국내 유사 유산과의 비교는 물론이고 국외 유사 유산과의 비교연구도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하는데 이런 비교를 통해 등재하고자 하는 문화유산의 정당성이 확보되는 것이다.
▲ 능산리고분군 |
지난 2004년 등재된 북한과 중국의 고구려유적의 경우 무덤벽화와 구조는 인류의 창의적 재능을 보여주는 걸작이라는 기준 1이, 고구려 수도들은 초기 산악도시의 전형으로 이후 주변 문화군(群)에 영향을 미쳤으며 고분 내부의 벽화는 미적인 기술과 양식에 있어 다른 문화권들과의 강한 교류를 증명하는 것이라는 설명은 기준 2가, 도시와 고분유적은 사라진 고구려 문명을 증거하고 있다는 것은 기준 3이 적용된 사례라 할 수 있다.
서 교수는 “길림에 위치한 고구려 유적은 3개 도시유적과 40여 기의 고분을 포함하는데 고구려유적에 적용된 근거들은 공주·부여 역사유적지구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고자 할 때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이라며 “공주·부여에 남아 있는 백제 당시의 도성유적과 고분은 사라진 백제문명을 증거하고 있으며 백제의 도읍지는 문화와 자연의 완벽한 조화를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 유적 가치정립·보전·홍보 유기적 결합해야
한편 지상에 드러난 유물유적이 부족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은허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 중국의 사례를 보기 위해 간 이번 탐방에서 답사단은 OUV를 충족할 수 있는 유적의 가치정립과 유적의 가치보전, 주민 홍보가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유적의 진정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다양한 교육전시시설을 마련하는 등 ‘보여주는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최정필 국제박물관협의회 한국위원장(세종대 교수)은 “은허가 세계유산이 된 데는 유적의 정비복원보다는 세계 최초의 갑골문이 출토되었다는 중요성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 답사를 통해 정림사와 능사, 천마총, 황룡사 등의 복원에서 항상 대두되는 진정성 논란에서 나름의 원칙을 마련하고 이를 관철시키는 아이디어와 과감함을 배웠다”고 말했다.
또 부여군문화재보존센터 이동주 책임연구원은 “지상에 드러나 있지 않은 평면형태의 유적지에 수목 등을 활용한 다양한 기법의 모식방법을 통해 왕릉의 형태를 구별하게하고 강화유리관 아래 매장유구를 통해 당시의 문화를 알 수 있도록 한 점은 좋았지만 유적지구내에 전망대를 설치했다가 철거하는가하면 관람동선을 따라 시멘트포장으로 탐방로가 조성되어 있는 점 등은 개선이 필요한 부분으로 이는 공주·부여 역사유적지구의 정비와 복원 원칙을 마련하는데 참고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끝>/임연희 기자 lyh3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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