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언 빙햄은 전국을 떠돌며 회사 대신 해고를 통보하는 대행업자다. 비행기에서 살다시피 하는 그의 꿈은 1000만 마일리지를 모아 플래티넘 카드를 얻는 거다. 평범한 인간관계에서 발을 떼고 살던 그가 당돌한 신입사원과 출장길을 동행하게 된다. 이 여행이 그를 변화시킨다.
이 남자, ‘쿨’하다. 사람은, “떼를 지어 사는 백조가 아닙니다. (혼자 살아가는) 상어죠”라는 남자. 삶도 가벼워야 한단다. “삶이란 배낭에 넣고 다니는 짐 같은 겁니다. 특히 사람과의 관계가 가장 무거운 짐이죠. 짐을 다 버리고 나면 정말 상쾌하지 않을까요? 당신의 배낭에는 지금 무엇이 들어있습니까?”
남자의 이름은 라이언 빙햄. 직업은 ‘해고통보 대행업자’다. “오늘부로 회사를 나가줘야겠다”는 통보를 회사 대신 전해주기 위해 미국 전역을 떠돌며 한 해 평균 322일을 비행기에서 지낸다.
“당신 잘렸어”라는 말만큼 남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말도 없다. 그러나 죽음에 무감한 시체부검의처럼 빙햄은 생계 잃은 사람들의 절망에 덤덤하다. 그는 매끄러운 말솜씨로 실직자의 정신적 충격을 줄이면서 회사에 책임이 돌아올 수 있는 불상사의 여지도 말끔히 없앤다. 이런 식이다. “언제 이 일을 관두고 좋아하는 일로 복귀할 생각이었습니까? 지금 당신에게 기회가 온 겁니다. 이건 부활이에요.”
쿨한 게 아니라 너무도 외로운, 그럼에도 자기가 외롭다는 모르는 남자가 아닐까. 비행기에서 살고, 땅위 어느 것에도 마음을 두지 않는 그의 삶은 공중, 제목 그대로 ‘인 디 에어(In The Air)’다.
제이슨 라이트먼 감독은 조지 클루니를 염두에 두고 각본을 썼다. 조지 클루니는 무심함과 냉정함으로 외롭고 여린 속내를 포장해 일상을 버텨내는 빙햄을 맞춤옷을 입은 듯 연기한다. ‘잘생긴 유전자를 타고났지만 다소 느끼한 배우’ 쯤으로 생각했다면 ‘인 디 에어’는 그런 선입견을 ‘중후한 매력의 연기파 배우’로 바꿔줄 만하다.
라이트먼의 장기는 심각한 이야기를 코미디에 버무려 전하는 거다. 그는 월터 컨의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날카로운 유머와 통찰력 있는 대사를 더해 직접 시나리오를 썼다. 카우보이처럼 떠돌아다니는 외롭고 가련한 한 남자를 통해 ‘과연 우리 인생은 괜찮은가’ ‘제대로 된 삶을 살고 있는가’, 하고 묻는다. 인생은 결코 혼자 걸어가는 여행길이 아님을 곱씹게 한다. ‘인 디 에어’는 뛰어난 연출력, 배우들이 연기, 통찰력 있는 메시지 등 세련된, 그러면서 씁쓸한 코미디다.
빙햄이 그렇게 꿈꾸던 플래티넘 멤버가 되고도 왜 기뻐하지 않는지, 그의 표정이 뭘 말하는지, 한 방을 쓰고 싶은 사랑스런 여인을 삶의 부조종사로 맞으려 찾아갔지만 결국 되돌아오는 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면 가슴 한 구석이 저릿할 거다.
라스트신에서 감동을 느꼈다면 엔딩 크레디트가 다 올라갈 때까지 자리에 앉아있기를 권한다. 경쾌한 연주곡이 잦아들 즈음 한 사내의 수줍은 듯한 자기소개와 노래가 들린다. ‘해고통보 대행업자’를 그린 영화가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미국 미주리 주에 사는 실직자 케빈 레닉이 만든 ‘업 인 디 에어’다. 소박한 통기타 반주에 갈라진 목소리, 잡음이 섞인 이 노래는 영화 속 이야기에 젖어든 관객의 마음을 달래준다.
“어떤 이는 계획과 다르게 흘러간 삶을 꾸려가고, 또 어떤 이는 견디기 어려운 상황 속에 갇혀 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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