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덕훈 한남대 경영학과 교수 |
만약 일본이 문화다원주의까지 흡수한다면 일본은 엄청난 파워를 갖게 되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무리다.
문화 다원주의는 오늘날 일본 사회의 모습과 정반대이기 때문에 일본은 초강력국가가 되지 못한다고 지인인 미국학자는 이야기한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문화적 특수성과 독특함 때문에 일본적이라는 것에 긍지를 품고 있지만 일본이 정말 강대국이 되려면 문화 다원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일본에 한두 달만 있다 보면 일본의 특수성과 일본적 독특함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소프트뱅크의 손정의(손마사요시)도 '손'이라는 한국식 성을 고집하면서 귀화투쟁을 해서 몇 년 전에야 겨우 일본이름이 아닌 한국이름으로 귀화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일본이 성공하려면 일본적 특징인 일본의 '독특함'을 버리고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보편화로 동화돼야 한다. 이는 일본에게는 아주 힘든 과제로, 심지어는 사회적인 격변까지 수반되는 격심한 고통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다.
전통적으로 일본 기업들은 단기 성과보다는 장기 시장점유율을 중시하고 종업원을 우선시하며 종신 고용 및 연공서열 제도를 유지했다. 하지만 최근 전통적인 일본식 경영 스타일에 미국식 단기 성과주의적 요소를 도입한 캐논과 일본전산 등의 기업에서 새로운 성공이 나타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이제야 겨우 일부기업에서 일본적이 아닌 서양식문화를 도입한 문화다원주의의 초보적 걸음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선도적 일본 기업들이 서구식 기업 문화를 적극 수용하고 있는 이유는 일본식 경영 자체의 내재적 문제점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일본 기업들은 부서 간 갈등이 표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이는 개인보다는 집단을 중시하는 문화적 전통과 관련돼 있다. 일본 기업들은 갈등을 없애기 위해 합의 문화를 발달시켜 왔는데 특히 중간 관리자들의 역할이 강조됐다. 중간 관리자들은 동료와 상사, 부하 직원들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대립과 갈등을 사전에 조정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산업 사회에서 일본 기업들은 특유의 합의 문화를 바탕으로 집단의 역량을 극대화해 고도성장을 구가했다.
특히 여기에서 나타난 일본적경영의 최대장점으로 나타난 '하의상달형의 의사결정시스템(bottom-up management)'이 외부 환경이 급변하면서 지금은 오히려 단점으로 지목되고 있을 정도다. 회사의 사활이 걸린 일분일초의 신속함이 필요한 의사결정을 사원-계장-과장-차장-부장-상무-전무 부사장-사장의 일본식의 결재시스템으로서는 정보화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삼성과 김연아의 성공으로 한국 재벌의 신속한 의사결정과 자원을 집중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한국형의 CEO와 한국문화가 일본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음은 국제경쟁시대에서 속도의 경제가 원인이 되고 있다고 하겠다. 아무리 좋은 기술도 정확한 기간과 시간에 납품하지 못하면 경영학적입장에서는 소용이 없고 좋은 의사결정도 시간을 넘기면 필요없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고 특히 한국문화와 시스템을 무시하던 일본에서 한국형 기업문화와 한국문화를 존중하는 흐름이 등장한 것도 우리에게는 교훈이 된다고 하겠다. 이 시기에 타국도 인정하는 일본의 사고가 등장한 것인지 아니면 일시적인 것인지는 좀더 두고 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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