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 50년의 대전 대표 '가위손' 김태운(71)씨가 사고로 1년간 문을 닫았던 대전 중구청 앞 쌍암이발소를 다시 열었다. 지난해 2월 8일 오토바이를 타고 출근하던 중 충남도청 앞에서 택시에 치여 병원신세를 지게 된 김 씨는 사고 1년만인 올 2월말 퇴원해 가장 먼저 한 일이 가게 문을 여는 것이었다.
“평생을 이발소에서 살았는데 가위를 놓고 병원에만 누워 있으려니 답답하긴 말할 수 없고 가게에 왔다가 되돌아갈 손님들 생각에 하루라도 빨리 문을 열고 싶었죠.”
고령인 김 씨가 서둘러 이발소로 돌아온 이유는 자신과 처지가 같은 노인들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자라는 게 머리카락인데 1만원 정도하는 이발비가 노인들에게는 큰 부담”이라는 김 씨는 “수십 년 단골들이 과거에는 수입이 있어 이발비를 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자식들이 주는 용돈으로 머리를 깎아야하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일흔을 넘긴 노인이 되고 보니 다른 노인들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게 됐다는 그는 “실직이다 경제위기다해서 자식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부모에게 넉넉한 용돈을 주기 어려울 테고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노인들은 가만히 있어도 자라는 머리카락이 야속하다”며 웃었다.
“서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형편을 뻔히 아는 사이가 되다보니 주머니 사정에 따라 이발비를 받고 이마저도 없을 때는 안 받기도 한다”는 김 씨는 “평생을 남의 머리만 깎고 가진 재주라고는 이발 기술밖에 없는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봉사가 이것 말고 또 뭐가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서산이 고향인 김 씨가 20대 초반 청년시절 대전에 와서 이용기술을 배운지 올해로 50년째인데 그와 함께 기술을 배웠던 사람들은 모두 작고하고 없단다.
한때 대전의 유명 가위손으로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수십 명의 머리를 쉴 새 없이 깎던 그에게는 이제 할아버지 손님들뿐이고 그 마저도 하루 한명도 오지 않는 날이 있다.
사고로 다리에 철심을 박아 오래 서 있기 어렵고 거동도 불편한 김 씨에게 언제까지 이 일을 하겠느냐고 묻자 그는 “내게 언제까지라는 말은 없습니다. 서 있을 수 있을 때까지, 가위 잡을 기운이 있을 때까지는 절대 이발소 문을 닫지 않을 겁니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임연희·동영상=이상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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