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경일 건양대 문학영상학과 교수 |
2010년 2월, 동계올림픽이 열린 밴쿠버 하늘에 태극기가 올라갈 때 시상대에 올라선 자랑스런 한국 젊은이들의 이름은 '이정수'가 아니라 '이중수'로 '이호석'이 아닌 '이호숙'으로 불리고 있었다. 이름 잘못 불리기의 피날레는 단연 김연아였다. 세계의 모든 언론은 우리의 연아를 '연아'가 아니라 '유나'로 부르고 있다.
우리 국민들이 세계로 나아가기 시작하면서 국제사회에서 이렇게 우리 이름이 잘못 불리는 일들이 비일비재로 늘어나고 있다. 자칫하다가는 세계적인 피겨의 여왕은 연아가 아니라 유나로 굳어질 수도 있다.
물론 우리의 이름이 잘못 불려지는 것이 전적으로 그들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들은 우리가 표기해준 영어식 이름을 보고 자기들 발음원칙대로 읽었을 뿐이다. 사실 외국인들이 Seoul을 '서울'로 발음하기는 무척 힘들다.
김대중 대통령은 Kim Dae Jung로 표기되는데 노르웨이 사람들에게 Jung은 당연히 '융'으로 읽히는 표기이기 때문이다. 이정수(LEE Jung-Su), 이호석(LEE Ho-Suk)도 캐나다 사회자의 발음 관습대로 불리었을 따름이다. 똑같은 Jung 이라도 노르웨이와 캐나다의 발음법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연아의 경우는 조금 달리 이해해야 한다.
김연아의 공식 영어표기는 KIM Yu-Na이다. 누가 김연아의 이름을 이렇게 표기하여 올림픽위원회에 제출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는 국어의 음절구분 원칙에 위배된다. 국어식으로 하면 Yun-A가 되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발음은 같아지지만 음절 구분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아무튼 이런 표기만으로 외국인들이 연아라고 발음하기는 쉽지 않다. 영어나 기타 유럽언어에는 우리의 'ㅓ' 발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름이 잘못 불리는 이런 현실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는가? 이름이란 한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가장 기초적인 사항인데 말이다. 방법은 한가지 밖에 없다. 우리의 이름을 로마자로 정확히 표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신의 이름이 잘못 불려진다면 정확히 부르도록 분명하게 요구해야 한다. 외국인들은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누는 사람에게 자신의 이름이 어떻게 발음되는지를 분명히 알려주어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한다. 그리고 잘못 발음되면 친절히 고쳐준다.
우리가 외국인의 이름을 언론에서 고쳐 부른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1960년대를 풍미했던 포르투갈의 세계적인 축구선수 Eusebio가 우리나라에 왔을 때 우리 언론은 그를 '유세비오'라고 불렀다. 그러나 얼마 뒤 그의 이름이 본국에서는 '에우제비오'라고 불린다는 사실을 알고는 바로 그렇게 바꿔 부르고 있다. 1980년대 미국을 이끌던 Ronald W. Reagan도 '리건'에서 '레이건'으로, 브라질의 축구선수 Ronaldo도 '로날도'라고 불리다가 '호나우두'라고 바뀌었다. 모두 그들이 실제 발음하는 관행을 존중하여 불러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도 분명해진다. 이제는 우리도 외국인에게 우리의 이름을 정확히 불러주도록 요구해야 한다. 우리의 이름을 영어식으로 써 놓고 난 뒤에 그들이 어떻게 부르는 상관않는 태도여서는 안 된다. 더욱이 그것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불려지는 자랑스런 이름일 때, 그 이름을 통해 우리의 자부심이 온 세계에 드러나는 것이 때에는 더욱 그러하다. 개인적인 자리에서는 물론 공적인 자리에서도 반드시 어떻게 부르는가를 확인하고 잘못되었을 때는 가장 우리 발음에 가깝게 불러주도록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 그것이 세계 10위권을 넘나드는 국위를 가진 나라 국인의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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